“참으로 고해 같은 인생 살이오. 아무리 복 많은 인생도 고통뿐이거든”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오늘 유난히 내 가슴을 파고든다.
나와 20년 이상 차이 나는, 이미 아이들도 대학에 다 보내놓고 어떻게 보면 삶의 후반기에 들어간 여자 선배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이 선배는 회사에서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여직원이 별로 없는 업무 특성상,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선배가 능력만큼 모든 걸 인정 받은 건 아니다. 사실 이 선배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그럼에도 어쨌든 우리들에게는 롤모델 같은 선배다. 이 거친, 남성중심적인 문화의 회사 생활 속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임원 자리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선배가 지난 6월 병가를 내고 휴직에 들어갔다. 암으로 추정되는 악성종양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회사 동료들도 선배에 대한 걱정이 쏟아졌다. 다행히도, 암 직전에 악성종양을 발견해 암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하게 됐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선배는 두달 여 가량 병가 후 최근 복직 했다. ‘복직하셨으니 한번 식사하시죠’ 라며 약속했던 날이 오늘이었다. 식사 초반 어색함을 떨구고 심각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 교육 문제, 육아 문제, 남편 얘기들로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이 이야기들도 사실 전혀 가볍지 않은 얘기들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돈은 어떻게 모아야 할지 모두 내 삶과 아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얘기가 내 앞에 닥친 걱정거리였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셨다.
가벼운 얘기만 했지만, 그래도 예의상 선배의 안부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에 “선배 이제 몸음 좀 괜찮으세요?” 라고 물었다. 선배는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는 순간을 설명해줬다. 지금은 몸조리를 잘 하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적막이 돌자 선배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선배가 아픈 시기에 선배의 남동생도 아프다는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선배는 무겁게 입을 뗐다. “응. 많이 안좋아”,
“사실대로 얘기하면 얼마 안남은 상황이야. 그래서 마음이 너무 무거워”라고 말했다. 선배 말에 따르면 선배의 남동생은 50대 초반으로 아직 너무 젊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 남동생의 직업은 의사다. 아이들은 이제 대학생,고등학생이란다. 대장암 말기 투병중인데, 해볼 수 있는 치료는 다 했다고 한다. 임상시험까지도 시도했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돼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이란다. 참을성이 큰 동생인데도 마취제 등으로 버티며, 부모님 앞에서는 안 아픈척 했던 동생이 최근에는 부모님 앞에서는 아픈걸 참아야한다는 정신력마저 놔버리고 고통을 드러내고 있단다. 선배는 기도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동생의 완치, 이후에는 완치가 아니어도 퇴원만이라도, 이제는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지켜보며 고통이 줄어들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동생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적을 여전히 바라지만, 이제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라고...동생의 상황이 그렇다보니, 선배가 아픈건 친정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선배는 선배 몸이 성치도 않지만 동생을 돌보느라 주말마다 고향인 전주에 가서 부모와 올케, 조카들을 챙긴다고 한다. 이미 오빠를 잃었던 선배는, 친정부모를 바라보는 마음도 너무 안 좋다고 했다. 친정 엄마가 말하기를 “왜 나한테만 이런 슬픔이 오느냐‘고 했단다. 친정 엄마는 아들 간병을 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들을 챙기면서 또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얘기를 듣는데, 내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선배의 친정 부모님 나이는 짐작컨대 적으면 70대 후반 혹은 80대 노인네들 일텐데, 이제는 좀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생에 아들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체, 인생을 살면서 슬픔이 없는 때가 고통이 없는 때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봄 나도 아빠의 건강으로 힘들어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참 아이러닉했던 게 젊은 시절 고생했던 부모님의 최근 모습을 보며 이제 걱정이 없으시겠다고 생각을 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또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 이제는 즐기시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을 했을 때,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한 듯 아빠의 건강이 일시적으로 안 좋았다. 그때도, 정말 불행과 고통은 불현 듯 오는구나. 이제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는 때에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선배의 얘기를 들으며 그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슬픔과 고통을 안 겪는 게 가장 좋지만, 만약 겪게 된다면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버텨낼 힘이 내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