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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Aug 16. 2023

비폭력대화를 배웠더라면

<비폭력대화>, 마셜 로젠버그


내가 어릴 때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언제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는 깊은 불신이 두 사람 사이에 상존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하고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소통했다. 부부는 상대의 부족함을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자신이 비판받으면 격앙되어서 자기 방어태세에 돌입했고, 상대의 약점을 틀어쥐고 곧바로 반격했다. 짜증과 화, 분노,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가 그 말들에 온도를 높였고,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언니와 나와 동생은 주로 셋이서 한 방에 모여있었다. 혼자 있기는 너무 무서웠. 아무리 귀를 막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험한 말을 듣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저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냐..? 엄마랑 아빠랑 진짜 이혼하면 어떡해?" 같은 말을 조심스레 나누며,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다.



대외적으로 나의 부모는 교양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사회경제적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그런 남편을 충실히 내조하는 아내의 전형. 그들은 나란히 차려입고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골프모임, 단체 해외여행, 동문회, 각종 계모임.. 늦은 밤 모임에서 돌아온 부부는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싸웠다. 시작은 주로 "밖에서 그렇게 좋은 남편인 척하지 마라."는 엄마의 말이었던 것 같다. 아빠 "내가 또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냐"로 아쳤다. 삼 남매는 어김없이 숨을 죽였다.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그 당시 엄마의 말에 가려져있던 욕구를 발견했다. 그건 아마 '나는 당신이 집에서도 좋은 남편이었으면 좋겠다'였을 테다. 아내가 바라는 '좋은 남편'이 어떤 것인지를 아빠가 좋은 말투로 물어봐줬더라면 어땠을까. "당신의 이중적인 태도에 실망감을 느, 나는 지금보다 존중받기를 원한다"라고, 엄마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아빠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조금 더 욕심내서, 어린 내가 부모에게 "아빠 엄마가 소리 지르면 무섭고 겁나요. 저는 우리 집이 편하고 모두가 안전한 곳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상상해 본다. 만약 우리 가족 사이에 그런 언어가 오갔다면, 지금 우리는 크게 다르살고 있진 않을까.



비폭력대화법은 랍다.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다른 시선으로 보게 다.



유치원버스에서 내린 가 문구점에 가서 슬라임을 사달라고 졸랐다(유치원에 다녀오면 늘 뭔가 사달라고 한다). 슬라임은 옷에 묻어서 안된다고 했잖아.라고 내가 말하자 딸은 심술궂게 토라진 얼굴리친다. "엄마 나빠!" 

나는 화가 난다. 분명 지난번에 '엄마 나빠'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꼭꼭 약속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말은 안하기로 했지않아? 라고 말하는대신, 나는 심호흡을 한다. 

상대의 말이 아니라 그 말속에 숨은 욕구를 보라고 했다. 내가 화가 나는 건 상대방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상대에 대한 내린 해석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 엄마한테 나쁘다고 말하는 거 보니 화가 난 것 같네?

- 응(씩씩거린다).

- 슬라임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안된다고 해서 속상한 거야?

-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응.

- 엄마는 지난번에 금쪽이가 옷이랑 머리카락이랑 이불에 슬라임을 묻혀서 그거 씻어내느라 힘들었어. 그래서 다시는 슬라임 사지 말자고 말했던 거야.

- 근데, 이제 안 묻힐 거야! 옷도 벗고, 머리는 묶고, 이불 없는데서 갖고 놀면 되지 않아??

- 음.  그렇게 말하니까, 한번 더 기회를 줘볼게. 오늘은 집에 이미 들어왔으니까, 내일. 내일 문구점에 가는 거 어때?

- 좋아.

- 그리고 금쪽이가 엄마 나빠!라고 말하는 거 들으면 엄마는 많이 속상해. 마음이 화나고 좀 슬퍼. 화났을 때도 서로 좋은 말 하기로 노력해 볼까?

- 응. 이제 그 말 안 할게. 엄마, 미안해.



7살이지만 엄연히 자신의 생각과 논리와 감정이 있는 상대방이다.  나는 가까스로 상대방의 말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감정을 쏟아내거나 상대의 태도를 비난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번엔 성공한 것 같지만, 다른 숱한 상황에서는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 대화법은 사실 너무 힘들. 비폭력대화라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 소진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같은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삼켜야 한다. 든 걸 말로 해야 한다. 말을 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야 하고, 말을 길게 해야만 한다.


이 책을 2 회독하며 필사한 분량이 A4 열 장이다.

언젠가 마셜 선생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며, 이 책의 내용을 내 머릿속으로 죄다 옮기고 싶다는 욕망과 이 대화법을 체득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공감하면서 존중하는 대화를 하며 살고 싶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다. 아직 많이 서툴지만, 실패를 반복하며 배우고 나아질 것이라 믿어본다.


이 책은 나의 두 번째 인생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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