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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Aug 29. 2023

더 이상 이불에 쉬하지 않는

일곱 살 둘째에 관하여

담이는 기저귀를 늦게 뗐다. 다섯 살 때까지 기저귀를 착용했고, 일곱 살이 되도록 자다가 이불에 쉬를 했다. 연년생 언니 세 살  기저귀와 홀연히 작별했으며, 이불에 오줌을 싼 것도 딱 한 번이었다. 나는 둘째를 키우며 자매의 극적인 대비에 번히 당혹스러웠다.


몇 해 전까지 담이는 본인이 쉬한 줄도 모르고 쿨쿨 잤다. 축축해진 매트리스를 감지하고 소스라치게 깨는 건 언제나 옆에 누워 자던 나였다. 축함에 혼비백산하여 깬 나는 아이를 안아 저쪽 방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젖은 이불을 수습해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한숨 돌린 뒤 잠든 담이의 엉덩이를 물티슈로 닦아내고, 새로 이부자리를 펼친 뒤 그 위에 누웠다. 잠은 저 멀리 달아나버린 뒤였다. 고단한 밤이었다.


일곱 살 된 담이는 자다가 쉬를 하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 엄마, 나 쉬했어.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휘리릭 샤워시키고, 장에서 새 이불을 꺼내 침대 위에 깔았다. 오밤중 이이벤트 적게 잡아 서른 번  발생했다.


처음에는 화도 났다. '그러니까 그냥 기저귀를 하고 자라고..!'라고 소리치고 싶어서, 속으로 외쳤다. 화는 남편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자다가 난데없이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데 이 인간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잠귀가 밝고, 그는 반대이다.) 때로는 얄미워서, 그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려 깨워서 아이를 샤워시키게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혹은 이틀연속. 담이가 계속 이불에 쉬를 하자 나는 방수 매트리스커버를 씌웠다. 그리고 작은 담요를 담이 혼자 덮고 자게 했다.(진작 씌울 걸.) 그 후엔 이가 오줌을 싸도 매트리스커버와 시트, 담요만 세탁기에 돌리면 됐다. 내가 아끼는 구스 이불이 오줌에 젖지 않아서 감사했다. 새벽에 깬 나는 최대한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의 젖은 사타구니와 엉덩이를 샤워기로 씻기고 다시 누웠다.


언제부턴가, 우리 모녀는 새벽에 깨지 않는다.

헤아려보니 마지막으로 한밤중 이벤트를 수습한 것이 올해 초였다. 담이는 이제 더 이상 이불에 오줌을 싸지 기로 한 것 같. 그러고 보니, 이상 침대 가장자리에서 자다가 굴러서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은데, 아쉽다. 우리의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요즘 담이는 아침마다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버틴다.


- 엄마, 나 유치원 가기 싫어. 집에서 엄마랑 언니랑 같이 놀고 싶어. 우리 다 같이 마트에 가서 딸기 우유랑 아이스크림 사 와서 먹고 싶어. 엄마도 학교에 안 갔으면 좋겠어. 엄마는 왜 학교에 가야 하는 거야? '엄마 선생님'은 마음에 안 들어. 엄마는 엄마만 하면 안 되는 거야? 엄마는 학교에서 맨날 늦게 오고, 나는 유치원에 계속계속계속 기다리고. 친구 엄마들은 일찍 와서 데리고 가는데, 나만 남아서 선생님이랑 블록놀이하는 거 하나도 재미없어. 엄마도 일찍 오면 안 돼? 그러면 유치원 갈게.


종알종알 구구절절 말도 잘한다.




퇴근 후 유치원에 데리러 가면 담이는 선생님이랑 알콩달콩 놀고 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 엄마, 나 이제 바어. 나 케이크 만드는 사장님 말고 소방관이 될 거야.

- 소방관? 멋지네, 근데 그거 너 할 수 있겠어?

- 응 나 알아 불 어떻게 끄는지. 달님이에서 봤어. 긴 호스를 잡고 멀리서 불 끄면 하나도 안 뜨거워!





너는 대체 무엇을 더 알고 있을까.

나는 이따금씩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담아, 너는 그냥 계속 일곱 살이면 안될까? 크지 말고 계속 7살 해, 귀염둥이야.
- 그래 좋아. 음.. 그럼 엄마도 계속 40살 해. 그러면 할머니도 안되고 죽지도 않고 우리는 다 같이 계속계속 같이 살 수 있겠다. 맞지?




며칠 후 9월1일은 담이의 생일이다.

나는 일곱 살의 담이를 글로나마 잠시 붙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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