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는 경상북도 소재의 어느 캠핑장의 사무실 겸 매점에 산다. 그는 주로 장작박스 위에 올라앉아있다. 손님들은 햇반이나 라면 따위를 사러 매점에 들어왔다가 치즈를 본다. 쇼핑을 하다 말고 나른하게 앉아(혹은 누워) 있는 노란 점박이 고양이를 한번 만져보곤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를, 턱을, 배를 쓰다듬으면 치즈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러다가 점차 드러눕는다. 마치 계속 그렇게 만져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는 사람의 손길을 퍽 좋아하는 고양이이다.
치즈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캠핑장에 놀러 온 아이들은 치즈를 보러 자꾸자꾸 매점을 드나든다. 보리와 담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캠핑장에는 어린이 손님을 위한 산뜻한 시설들 ― 방방이와 클라이밍 경사대, 작지만 스릴 있는 집라인(zip wire) ― 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내내 치즈 곁에만 머물렀다.
밤이 되어 텐트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보리가 말했다.
-엄마, 우리 집에도 고양이 키우면 안돼요?
올 것이 왔다.
그것은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 적어도 수십 번넘게 했던 간청이자 징징 거림이었지. 그때의 엄마는 더없이 단호했다.
-동물은 안돼. 나중에 네가 커서 독립하면 그때 키우던지 해. 털 날려서 절대 안 돼, 엄마 비염 있잖아.
내가 알기로 우리 엄마는 다방면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는데 유독 '동물'영역에서만큼은 철벽같았다. 나는 가끔 엄마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상황에 ― 이를 테면 동창회에서 한껏 상기되어 귀가했을 때나 내가 중간고사에서1등 했을 때 ― 슬쩍 떠보았다.
-엄마, 근데 우리.. 집에 고양이 키우면 안돼요?
엄마는 즉시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그거는 안돼.
나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물일곱에 독립을 했고, 마침내 나만의 공간에서 고양이를 키웠다! 진회색의 단모종인 러시안 블루, '레이니'였다. 나에게 처음 왔을 때 태어난 지 한 달가량 된 아기 고양이였던 레이니는 몇 달 만에 몸집을 불리며 성장했다. 레이니는 숨기를 좋아했고 낯을 심하게 가렸다. 좁은 방구석구석에 재주 좋게 몸을 숨겼다. 내가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오면, 레이니는 몇 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했다. 친구들은 '너 진짜 고양이 키우는 거 맞아?' 하며 돌아가곤 했다. 레이니는 외부인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약 1-2분이 지나면 어디선가 야옹- 하며 나타났다. 숨어있느라 피곤했다는 듯이 두 앞발을 쭉 뻗으며 길게 기지개를 켜고는, 사뿐사뿐 걸어와서 내 무릎에 올라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레이니는 쭉 나하고만 살아서 그런지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몸을 밀착시키는 일이 없었다.
바닥에서 내 책상 위까지 사뿐히 점프해서는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는 레이니는 뭐랄까, 상당히 경이로웠다. 그 우아한 몸짓과 도도한 걸음걸이, 극강의 예민함과 보석 같은 눈동자에 나는 사로잡혔다. 사회성 낮고 까다롭고 지나치게 신중하여 때로 사나운 그 성격은 타협하거나 개선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저 레이니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애썼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집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지방에서 출퇴근하느라 평일에 직장 근처 원룸에 기거했지만, 주말에는 부산 엄마집으로 갔다. 엄마는 동물을 싫어하니까 고양이를 집에 데려갈 수 없었다. 그때마다 레이니를 원룸에 혼자 두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연휴, 나는 큰맘 먹고 레이니를 데리고 부산에 갔다. 고양이 이동장을 들고 나타난 나를 보고 엄마는 기함했다. 이동장을 오픈하자 레이니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주위를 살피더니 냉큼 빠져나와 거실 소파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엄마는 어쩌려고 쟤를 데려왔냐며 나를 다그침과 동시에 대체 어디로 숨은 거냐며 레이니를 찾으려 온 집안을 뒤졌다.
다음날 아침, 레이니는 어디선가 조용히 기어 나와서 사료를 와작와작 씹어먹고 있었다. 엄마는 멀찌감치 앉아서 그 광경을 한참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뒤에서 지켜봤다.
- 잘 먹네. 숨어있느라 배 고팠나 보다. 물도 좀 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그릇에 물을 담아와서 나에게 건넸다.
그렇게 주말마다 레이니는 나와 함께 엄마집을 방문했다. 당시 부산집에는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레이니는 유독 우리 엄마를 따랐다. 엄마는 레이니에게 쉬이 다가오지 않고 멀찌감치서 지켜보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엄마가 소파 위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레이니는 껑충 점프해서 엄마 옆에 살포시 앉았다. 엄마는 눈으로는 티브이를 보면서, 손으로는 레이니를 쓰다듬었다.
3년 후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혼집에서 레이니를 데리고 살 수 없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극심한 반대 때문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심상하게 말했다.
-레이니 우리 집에 데려와라. 주말마다 와서 보면 되지 뭐.
레이니는 엄마집에서 수년간 함께 살았다. 매일밤 침대에 올라와서 엄마 베개에 몸을 밀착시키고 잠들었다. 엄마는 새벽에 자주 깨곤 하는데, 잠에서 깼을 때 레이니가 머리맡에서 코 골며 자고 있는 모습에 안정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고양이도 코를 곤다.) 세탁기를 더 자주 돌리고, 돌돌이를 더 자주 구매해야 한다고 나를 타박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동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정이 들고 길들여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헤어짐을 미리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보리와 담이는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참 치즈 이야기를 했다. 길에서 치즈와 비슷하게 생긴 길고양이를 마주치자 "치즈야!!!" 하며 아는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다가가기도 했다. 치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올가을에 그 캠핑장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