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을 위해지난7개월간 매일 수련을 했고, 시험을 1주 앞두고는도서관에 죽치며 꽤나 수험생처럼 지냈다. 요가철학과 이론을 내 언어로 서술해야 했고,하타요가를 주제로 10분간 발표도해야 했다. 수업 시연 도중 말이 버벅대거나 호흡을 놓치지 않아야 했기에 실기연습도 부단히 했다. 오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속히 오기를 기대하는 날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간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그 끝엔 짜릿한 성취감과 홀가분한 해방감이 있을 테고, 이윽고 허무함도 찾아오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어떤 기준에서 나는 성취했고 그 과정에서 성장했지만, 단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수련을 할 것이라는 사실. 몸이 허락하는 한, 삶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 사실이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 과정은 말하자면 요가를 향한 내 마음을 확인한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있는 내 본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휴직. 생업이라는 거대한 짐을 잠시 내려놓은 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하고 싶은' 일로 하루(낮시간 대부분)를 채우는 것이 가능한 날들이다. 뭔가에 쫓기거나 마음이 날뛰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할 일은 없다.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 따위로부터 자유로운, 실로 평안한 시간들이다.(재직중일때와 비교했을 때 물질적으로 덜 풍요롭지만, 월급으로 시간을 구매했다고 하기에 그 시간의 가격이놀랄 만큼 저렴하다는 기분.) 이런 때에 내 안의 깊숙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이 귀중한 시기에 나는 무엇을 하는가. 루틴을 한번 떠올려보면.. 지나치게 단순하다. 아침엔 약간의 근력운동과 달리기, 요가, 때로는 수영장. 밥 먹고, 장보고. 그 틈과 틈 사이에는 독서가 있다. 동네 도서관들에 거의 매일 방문하는 일상이다.
도서관 서가에 단정히 꽂혀있는 책등만 봐도 모종의 안정감을 느낀다. 나는 아무래도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순간의 기쁨에 비견할 만큼.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받아 들었을 때의 설렘과 흥분은 또 어떠한가. 서둘러 책을 펼쳐마음에 드는 문장에 띠지를 붙이고 메모장에 옮겨 쓰며 마음에 새긴다. 목적 없이 책을 읽을 때, 읽은 것에 대해쓸 일을 염두하지 않은 채 읽을 때 나의 독서행위는 순수하다. 읽어야 할 텍스트를 꾸역꾸역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은 문장들을 기꺼이 집어삼킬 때. 머리로는 해독하고 가슴으로는 견딜 때. 책 읽기는 몰입이고 행복이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독서모임 2개에 참석하게 되었다.
기존에 오랜 기간 이어오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친목을 기반으로 한 모임에 책을 곁들인 형태이므로 한계가 있다. 라포가 형성되어 있는 친밀한 지인들과의 수다는 그 자체로 즐겁기에 책 이야기는 쉽게 뒷전으로 밀리곤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새 모임에 들어가게 된 건 순수하게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욕구의 발로였다. 첫 번째 모임은 대중적인 신간을 읽는 캐주얼한 분위기이고, 두 번째 모임에서는 고전을 읽는다. 덕분에 지금 이제니 시인의 <새벽과 음악>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동시에 읽고 있다.
평일 오전 어느 동네 책방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했던 날.
내 이름을 말하고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아무도 나이와 직업, 결혼상태나 자녀유무를 묻지 않았다.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 내 이름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뻤다. 참석자들은 자신에게 책이 어떻게 와닿았는지에 관해저마다의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처음 본 누군가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들을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는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타인의 말을 자르거나, 끼어들거나, 대화의 지분을 지나치게 가져가는 이는 없었다. 진행자는 노련하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참석자들이 예의를 갖추었다. 책에 대한 감상과 해석이 다채로워서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낯선 세계에서 안전하다는 감각과 순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온기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지난 주말에는 2박 3일 서울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올해를 함께 쉬고 있는 친밀한 직장동료 둘과 함께였다. 그들은 예의 '지인 독서모임' 멤버들로서, 우리들은 영문과와 국문과, 즉 인문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에는 사범계열 출신인 선생님들이 대부분인데, 우리는 친해지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보았고, 그것을 계기로 더 가까워졌다.(같은 국어교사, 영어교사라도 사범계열과 인문계열은 분위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여행은 퍽 문학적이었다. 서촌에 가서는 이상의집, 윤동주하숙집터를 방문했고, 해 질 녘 창덕궁 낙선재에 나란히 앉아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떠올렸다. 숙소에서는 밤새 차를 마시며 백석의 시를 예찬했고, 뭇소설가와 시인의 뒷담화도 떠들었다. 책방에서 함께 읽을 책을 샀고, 여행 전날 들려온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소식에 함께 전율하고 기쁨을 나눈 것도 물론이었다. 이 여행은 흡사 문학기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정의 백미는 바로바로 연극 사운드인사이드(Sound Inside) 관람이었다. 서재희 배우가 맡은 역할에 지나치게 이입해서 나는 부끄럽게도 관극 내내 오열에 가깝게 울었다. 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연극이 끝나고 나자 탈진할 것만 같았다. 이 연극에 언급된 수많은 문학적 레퍼런스를 다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인물의 감정에 이상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강렬한 여운이 있었다. 액자식 구조로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흐르는데, 그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지독하게 외롭고 불완전하고, 슬프다. 극 중 '사운드인사이드'라는 제목이 'Listen to the sound inside'의 준말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당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는 그 메시지에 다시금 심장을 관통당하는 듯했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나로 살아가는 기쁨>에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삶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말한다. 지나영 교수는 <마음이 흐르는 대로>에서 'follow your heart'를 거듭 강조했다. <데미안>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인간이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라고 설명한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 내 마음을 따르는 것, 나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는순간이다. 관습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 너머에 있는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할 때. 나는 몹시 기쁘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과 또다시 조우하고 싶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마주치는 방식으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