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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Nov 08. 2023

광안대교 위를 달리다

부산 바다 마라톤


2023 시월 마지막 일요일 기록.


해운대 광안리 일대에서 열린 부산 바다 마라톤 10km 종목에 참가했습니다. 광안대교 위는 평소에 사람이 걸을 수 없는데(차량전용, 주정차 불가), 이 행사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대교 위에서 보는 광안리 바다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신청을 했지요.



일요일 아침 7시 30분. J와 함께 해운대 벡스코에 도착했습니다. 택배로 미리 받은 기념 티셔츠와 양말을 착용하고서요. 티셔츠에 배번호를 붙이고 러닝화에는 기록측정센서도 잘 붙였습니다. 짐 맡기는 곳에 가방과 외투를 맡기고 광안대교 상판(스타트라인)까지 걸었습니다.

10km 참가자만 5100명, 5km 참가자까지 더하면 대략 1만 명 정도 함께 뛰었을까요. 실로 어마어마한 인파였습니다. 



스타트라인에서 기록측정센서가 삐삐삐 삑 울려대며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J는 45분 이내 완주를 목표로 하는 재빠른 러너이기에 저만치 앞서 뛰어갑니다.

안녕- 도착해서 만나자-



혼자 남저는 귀에 에어팟을 꽂고 느리게 뜁니다. 노이즈캔슬링 상태로 성시경 노래를 들으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번엔 초반부터 오버페이스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기 때문이에요. 력이 완전히 좋은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귀를 막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제치며 앞서 나가더라도 흔들리지 말자. 욕심내지 말자. 이것은 나만의 레이스다. 완주가 목표이다.. 거듭 되뇌었습니다.



광활한 바다를 보며 달리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광안대교 위에서 듣는 <희재>는 평소보다 더 아련했지요. 숨이 많이 차지 않게 속도를 유지하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어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는 이 시간이 그저 선물이었습니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여기에 오다니, 정말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40분 정도 뛰었을까요. 어느새 5km 지점입니다.

바람의 온도는 시원했지만 아침 햇빛이 아직 뜨겁게 느껴졌던 날입니다. 달려서 얼굴에 더 열이 올랐어요.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얼굴도 더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이제 플레이리스트를 BTS로 바꾸고 속도를 조금 내봅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들으니 절로 빨리 달려집니다! (사실 저는 아미 Army입니다^^)



마지막 구간, 반갑게도 Y를 만났습니다! 서로가 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찾지 못했는데, 레이스 도중 그녀가 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우리는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며 잠시 발맞춰 걸었습니다. 지난 3월에도 지역 마라톤에 동반 출전했던 우리. 그땐 제가 기록을 낸답시고 혼자 뛰어갔었지요. 이번 대회는 기록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걸어도 뛰어도 그저 좋았습니다.

다치지만 말아요, 무리하지 마요! 나중에 만나요- 하며 우리는 각자의 페이스대로 결승선을 향해 뛰었습니다.



8-9km쯤 뛰니 고관절이 조금 아파옵니다. 특히 이번 마라톤은 연습량이 충분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3,4년 전에는 매일 달리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횟수도 줄고, 체력이 다소 떨어진 상태입니다. 감기도 잦고, 안 하던 잔병치레도 하게 되고요. 확실히 마흔이 되니 몸이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슬기롭게 몸을 돌봐야 하는 거겠지요.



어쨌든 완주했습니다. 이미 결승선에 도착한 J가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샤워하듯 쏟아졌습니다. 건강한 기운을 듬뿍 받아서 더 건강해진 기분. 우리는 자랑스럽게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근처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달리며 더없이 났다며, 내년에 꼭 다시 오기로 했습니다.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마라톤을 합니다.

저는 잘 달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어요. 10km 이상은 엄두조차 나지 않아요. 저에겐 충분히 긴 거리이고, 무척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육행위에는 재미와 희열과 감동이 있어요. 쿵쿵거리는 내 건강한 심장소리가 들립니다. 내 다리가 이 정도로 튼튼하다는 걸 확인하고요. 새삼 감사함도 느낍니다. 뭐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모종의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두발에서 시작되는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하지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결속감 있지 역설적으로 홀로 페이스를 지키는 외로움도 감당합니다. 달리기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생생히 감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달릴 때면, 내가 오십이 되어도 육십이 되어도 10km 정도는 달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소망합니다.



좀처럼 감기가 잘 안 떨어지는 늦가을입니다.

실은 이번 주말에도 신청해 놓은 마라톤이 있는데, 무리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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