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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an 05. 2024

예비소집과 핸드폰

이제 막 여덟살

작년에 첫째 보리가 입학했고, 올해는 둘째 담이 차례다. 연년생 자매가 둘 다 학생이 되다니. 새삼 감개가 무량하다.


어제는 담이의 예비소집일이었다. 가입학식 이라고도 부르는 이 날은 사실상 서류 제출날이다. 취학 통지서와 스쿨뱅킹 신청서, 그리고 (미리 작성한) 자기소개서, 가족 소개서를 가져갔다. '담임에게 부탁할 말'이라는 칸에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어냈다. 예비 1학년의 얼굴 도장을 찍는 날이기도 하여 담이와 손잡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간다며 종일 들떠있던 담이는 막상 교내에 들어서자 긴장한 얼굴이었다. 서류를 받고 안내 책자를 나누어 주는 선생님이 "입학 축하해! 입학식날 만나요~"라고 밝게 말씀하시자, 담이는 나지막하게 "네" 하고 대답했다.


초고속으로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웠는지 담이는 "언니 교실에 가보고 싶어"라고 했다.


-언니 교실에 지금 언니는 없어. 담임 선생님이 계실 것 같은 데, 선생님이 너 누구냐고 왜 왔냐고 하면 어떡할 거야.

-솔이 언니 동생이라고 하면 되지!

-네가 말할 수 있어?

-응!

-그럼 선생님께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언니 교실 구경하고 싶어서 왔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나 이제 용감해, 할 수 있어!!


초면에 낯가림이 심한 아이가 모처럼 큰소리를 치길래 1학년 8반 교실로 가봤다. 역시나 빈 교실에 담임선생님 혼자 남아 업무 중이셨다. 뒷문에 서서 조심스럽게 똑똑- 하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오셨다.


-아, 솔이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아~~ 동생이 입학한다고 하더니 오늘 예비소집 왔군요~~~~

-네^^

-네가 솔이 동생이구나, 이름이 뭐예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담이요..

-아이구~ 언니만큼 똑똑해 보이네~! 학교에 오면 정말 재밌을 거예요. 1학년 되어서 학교에서 선생님 만나면 인사해요~

-네.


호기롭던 모습은 어디 가고, 담이는 선생님 앞에서 겨우 "네" 한마디 했다. 그것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속으로 많이 웃었다.



며칠 전, 담이는 언니가 1년간 쓰던 핸드폰을 물려받았다. 평소에도 언니 것을 받아 쓰는 일을 몹시 좋아하는 동생이지만 이번엔 특히 기뻐했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나는 고민 끝에 1년 전 솔이한테 해줬던 것과 똑같이 해주기로 했다. 유심을 사서 알뜰폰으로 셀프 개통을 해주었다. 한 달에 5,000원 정도의 요금이 나오는(통화 1시간, 문자 100통), 카카오톡도 유튜브도 게임도 없는 폰이다. 전화와 문자, 위치 추적과 아파트 공동현관 입출입 기능만 사용한다. 핸드폰을 받은 담이는 제일 먼저 내 번호를 눌러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가 외우는 유일한 전화번호이다.) 나는 안방 드레스룸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응 엄마야.

-엄마!!!!!!! 내 말 들려?????꺄~~~좋아!!

 

거실로 나오자 기쁨에 도취된 담이가 폰을 붙들고 있다.

나는 전화번호 저장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한 번 가르쳐주니 두 번째부터는 척척했다. 아이는 아빠, 언니, 양가 할머니, 외숙모, 외삼촌, 양가 할아버지의 순서로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자기 폰에 전화번호가 이렇게 많다며 몹시 뿌듯해했다.


다음으로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한글을 제법 익힌 담이는 곧잘 따라 했다. 새삼 갤럭시 천지인 한글입력 원리가 참으로 직관적이라는 걸 느꼈다. 잠시 후 담이에게 첫 메시지가 왔다.


'엄마 나학교에서 잘지내고 있어'


이게 뭐야? 했더니, 미리 연습한 거란다. 나중에 학교에 가면 이렇게 보낼 거라며.

정말이지 못 말리는 귀염둥이다.


핸드폰이 생긴 담이는 이제 태권도 도장에 혼자 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데려다 달라, 끝나면 데리러 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씩씩하게 혼자 집을 나서서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거실 창으로 지켜보았다. 저 멀리 계단을 내려가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계속 보았다. 담이가 혼자서 이렇게 먼 길을 간 건 처음이었다.


작년에 솔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들었던 마음이 다시 일었다.

내 일부였던 뭔가가 훅 떨어져 나가는 허전하고 아련한 느낌. 첫째 때 한 번 겪어봤으니 둘째 때는 덤덤하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애는 그 애가 아니니까. 아이가 열 명이어도 열 번 생생할 허함일 것이다.




다음날 내 폰으로 문자가 한통 왔다.

'01월 미성년자녀께서 사용하고 계신 초알뜰 요금제의 음성 통화량 안내 드립니다 사용량 30분, 잔여 30분'


띠로리---!!!


담이는 할머니와 다정하게 통화 중이었다.

"할머니이잉~ 언제 우리 집에 와~??"


나는 다급하게 손짓과 입모양으로 말했다. '어서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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