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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Nov 10. 2023

일곱 살, 태권도 도장에 가다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흰밥과 구운 가자미를 오물조물 씹던 일곱 살 담이가 말했다.


-엄마, 나 OO태권도 다닐래.


불현듯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지난 핼러윈데이. 담은 유치원 친구 윤아를 따라서 집 앞 태권도 도장(에서 열리는 파티)에 놀러 갔다 왔다. 거기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진도 찍었다더니, 마음이 동했나 보다. 체육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가 태권도에 다니겠다고 하니 나 반게 놀랐다.


- 오, 담이 너 태권도를 배워보고 싶은 거야?

- 응, 윤아가 그러는데 거기 가면 트램폴린이랑 에어바운스도 한대. 그리고.. 마켓데이도 한다던데? 그리고 거기 간장님(관장님이겠지)이 되게 웃.



담은 친구를 퍽 좋아한다. 아이는 7살이 된 후 생애 처음으로 학원을 다닌 이력이 있는데, 미술 학원은 유치원 친구 D를 따라서 간 것이었고 수학 학원은 윗집 친구 S을 따라갔었다. 지금은 모두 그만두었다. 이번 태권도는 과연 몇 달 정도나 다니려나.




다음날, 나는 퇴근길에 유치원에 들러 담이를 픽업한 뒤 함께 태권도 도장에 갔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각종 학원들로 즐비한 아파트 앞 상가 3층었다. 태권도 도장 문틈으로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어린이들의 새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잔뜩 신난 목소리였다. 문을 빼꼼 열었더니 수많은 어린이들이 5열로 맞춰 서서 무슨 게임을 하는 듯 보였다. 언뜻 봐도 40-50명은 되어 보이는 애들 규모에 깜짝 놀랐다.


내 인기척을 발견한 어머님 연배의 여성이 밖으로 나오시기에, 나는 등록 상담을 할 수 있는지 여쭈었다. 인자하신 그분은 이곳의 직원이신 듯했다. 그녀는 함박 미소로 우리를 반기며 상담실로 안내했다. 담이와 상담실에 앉자 이윽고 관장님이 들어오셨다. 검정띠를 두른 태권도 도복 차림의 덩치 우람한 남성이었다. 그는 담이를 보고는 방긋 웃었다. 핼러윈 때 서로 안면을 튼 것 같았다.


- 오, 담이 진짜 왔네?! 환영해!


쩌렁쩌렁한 관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는 내게 담이가 핼러윈 때 얼마나 재밌게 놀다 갔는지 말해주었다. 자신의 폰에서 담의 사진도 찾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포토존을 배경으로 마녀 머리띠를 쓰고 호박바구니를 든 담이가 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아는 내 딸은 낯선 곳에서 이런 표정을 짓는 애가 아닌데? 나는 조금 웃기고 당혹스러웠다. 담은 부끄러운지 괜히 딴청을 피웠다.


- 아 네, 그날 재밌었나 봐요. 감사했습니다. 애가 여기 다니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와봤어요.

- 아, 그러면 온 김에 바로 수업하러 갈까요?


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는 이 상황에 대해 미리 이야기 나눴었다.


- 아, 오늘은 옷이랑 가방만 받아가고 싶대요. 내일부터 온다고.

- 그래요? 그래요 그럼.. 가만있자.. 도복 사이즈가.. 11호 하면 될 것 같네요!



그는 태권도장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크로스백에 샛노란 도복을 담아서 건넸다. 반들반들한 새 가방을 받아 든 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를 안내해 주셨던 직원분은 관장님의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여기서 아이들 등하원과 환복 도와주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녀가 친구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구경시켜 준다 담을 데리고 나가자 관장님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아이 성격은 어떤지,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어떤 변화나 효과를 바라는지, 집에서 밥은 잘 먹는지, 가족 관계나 교우 관계는 어떠한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등등. 질문에 답을 할 때마다 그것에 관한 세부 질문이 다시 이어져서 상담은 꽤 길게 진행되었다.



- 성격은 외향적인가요? 아니면 좀 내향적인가요?

- 음, 둘 다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내성적인데 친해지면 엄청 외향적이에요.

- 외향적인데, 낯을 좀 가리나 보네요?

-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담이 유치원 선생님을 제외한 타인에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 본 일이 있었던가. 미술학원과 수학 학원을 등록할 때는 없었던 자녀 상담이 이어졌다. 말이 다소 느리지만 또박또박하고 서글서글한 관장님이었다. 수많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저렇게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하겠구나 싶었다. 이곳에서는 체육 교육은 물론이고 인성 교육과 주말 활동(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까지 한다니, 들을수록 어느새 흥미로운 관심이 생겼다.



담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도복을 부리나케 꺼내 입고 발차기를 해댔다. 설레하는 아이가 귀여워서 흐뭇했다. 앞으로 월수금은 담이가 유치원 끝나고 곧바로 태권도에 갈 테니, 나의 퇴근 시간대가 조금 여유로워지려나. 한편으로는 아까 카드 결제한 원비가 떠올랐다. 주 3회 15만 원. 매달 고정 지출이 또 늘었다. 사교육비는 줄여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하고 싶다는 건 해주고 싶으니.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면서 나도 분명 행복한데, 내 꿈인 명퇴와는 어째 자꾸 멀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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