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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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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Feb 08. 2024

2月

휴직을 앞둔 졸업 시즌

강당 뒤쪽 벽에 서서 졸업식을 지켜보다가 졸업생 섭 부르는 '이젠 안녕'을 들으며  울었다. 작년 우리 반이었던 섭이는 축제, 체육대회 같은 학교 행사 때마다 무대에 올랐는데, 이제 이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서운해졌다. 이는 맨날 지각하던 아이였다. 알고 보니 집은 학교에서 한참 멀었고 그 집에는 아이를 깨워줄 이가 없었다. 작년 가을 수학여행 출발날 아침. 그날은 버스도 안 다니는 꼭두새벽에 학교에 도착해야 했기에 나는 큰맘 먹고 섭이의 집 앞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설레는 표정으로 캐리어를 돌돌돌 끌고 걸어와 내 차에 올라타던 섭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선생님'하고 말하던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떠올랐다.


올해는 담임도 아니었는데, 졸업식에 열 맞춰 서있는 아이들의 뒤통수가 왜 이리 애틋한지.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매년 겪는 작별인데도 불구하고 이 섭섭하고 뭉클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또 어서 갑자기 눈물이 터질지 몰라 얼른 교무실로 돌아왔다. 공문 처리를 하고 있는데 J가 찾아왔다. 작년 우리 반 반장이었던 J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심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 이 아이를 보자 다시 그때의 감정이 살아나서 마음이 시큰해졌다.


- 선생님, 인사드리러 왔어요.

- 그래, J야! 졸업 축하해.

- 선생님.. 선생님 아니었으면 저 못 버텼을 거예요.. 진짜 감사드려요.


180이 넘는 키에 어깨가 건장한 J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익숙한 습관처럼 J의 왼쪽 손목을 슬쩍 열어봤다. 다행히 오래된 흉터 말고 최근에 생긴 상처는 없다. J는 1년 넘게 꾸준히 자신의 손목에 터칼로 자해를 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하고도 아이는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상처투성이인 그의 손목을 붙잡고 말없이 보건실로 데려가곤 했다. 


- 샘, 저 이제 안 해요.

- 그렇네. 이제 진짜 안 하는 거 맞네! 기특해라. 잘했다. 잘했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네가 얼마나 소중한데. 너를 아프게 하지 말아. 너는 귀한 사람이야.'였고

그때마다 아이가 게 했던 말은 '저는 제가 소중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였다.

앳되고 슬펐던 J의 얼굴이 한 톤 업되어서 이제 꽤 밝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크게 안도했다.


J를 보내고 나자 1학년 유리와 소희가 나를 찾아와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선생님, 부탁이 있는데요..

- 응? 뭘까?

- 저희 연극 동아리 만들건대 지도교사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 아... 정말 그러고 싶은데..


나는 새 학기에 휴직이 예정되어 있어서 지도교사를 맡아줄 수가 없다. 하지만 실망 가득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휴직계를 괜히 제출했나 싶을 만큼 아쉬웠다. 마침 지나가던 지윤이는 상황파악 못하고 나에게 와서 생글생글 거린다.


- 쌤~ 저희랑 같이 2학년 올라가시는 거죠? 저 쌤 말씀 듣고 요즘 영어 공부 해요!

- 아.. 지윤아 샘은 2학년 같이 못가. 사정이 있어서 쉬고 그다음 해에 다시 올 거야.

- 아 정말요??? 제 맘 알아주는 사람은 샘 밖에 없었는데..


지윤이는 영어에 취약하여 공부를 반쯤 포기한 아이였는데 그것과 무관하게 다른 면모가 무척 탁월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망설임 없이 나서서 돕고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모습을 자주 관찰했기에, 따로 불러서 칭찬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간호사라는 꿈을 갖고 있는 아이라 '우리 지윤이가 간호사선생님 되면 그 병원 환자들은 참 행복하겠다.'라고 속내를 말하기도 했다. 영어 공부 하라는 말은 따로 하지 않았는데 요즘에 영어 공부를 하고 있길래 또 칭찬해 줘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휴직을 앞두고 책상 정리를 하며 아쉬움과 해방감, 감사함과 섭섭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마음이 어지럽게 일어난다. 친애하는 내 동료 교사 H는 나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경력 20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범대 학부를 마치고 곧바로 임용되어 단 한 번의 휴직 없이 성실히 교단을 지켜왔다. 미혼, 무자녀에 베테랑 교사인 H는 방학 때마다 어디론가 홀홀 여행을 떠나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러하다. 그녀는 1학년 때부터 담임 맡은 학생들을 데리고 올해 3학년에 올라간다. 나는 매일 밤 사랑스러운 두 딸과 체온을 나누며 잠자리에 들면서 분명 행복하고 안락하지만, 어딘가 단단히 묶여있는 듯한 내 삶에 갑갑함을 느낀다. 경력이 툭툭 끊긴, 실수투성이 교사인 나는 커리어를 착착 쌓면서 여유로워 보이는 H 부럽기만 하다. 다 가질 수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쉽다. 사람의 마음 이토록  복합적으로 간사다.


학생들을 맡아 3년 연속 데리고 올라갈 날이 나에게도 오겠지. 마음이 뒤숭숭한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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