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교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Oct 07. 2023

감기와 출근

나에게 감기는 목이 따끔하다는 감각으로 시작된다.

목요일 아침에 증상이 시작되었고, 경미한 근육통이 동반되었다. 학교 보건실에 가서 선생님께 종합감기약을 받아먹었고,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그날 밤, 지독한 오한에 시달렸다. 겨울 잠옷을 꺼내 입고 구스이불을 두 겹 덮었는데도 추웠다. 집에는 타이레놀밖에 없어서 그걸 두 알 먹고 잤다. 내일 학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금요일 아침, 눈을 떴더니 오한이 사라졌다. 근육통도 조금 나이진 것 같고. 목이 더 부었는지 침 삼킬 때 따가운 증상만 더 심해진 듯했다. 이 상태로 수업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병가 낼까..


폰으로 오늘 시간표와 일정표를 열어봤다. 금요일은 원래 3 시간 수업인데, 오늘은 교체된 수업이 있어서 4시간이다. 엊그제였나. 수업을 바꿔달라는 부장선생님의 요청을 쿨하게 받아들인 터였다. 가장 걸리는 건 매 수업 시간마다 2명씩 하고 있는 아이들의 발표 수행평가였다. 발표 날짜를 미리 픽스해 두었기에, 순번이 밀리면 혼란이 올 것이었다.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영어쌤이 안 왔다고!? 그럼 나 발표는 어떻게!?' 하겠지.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깨달았다.

확실히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네. 병가라는 거, 이런 고민 못할 정도로 아플 때 쓰는 거 아니야?


타이레놀을 또 한 알 먹고, 패딩 점퍼를 껴입고 나는 출근했다. 오늘 새로 시작된 증상은 콧물과 코막힘이었다.

줄줄 흐르는 콧물이라 자주 닦아내야만 했다. 가래끓는 기침코를 훌쩍훌쩍하면서 왠지 주위를 의식하게 되었다. 바이러스 덩어리가 된 상태로 출근한 건 역시 민폐였던 걸까.


오늘 발표하기로 되어있던 아이들각자 신나게 발표를 했다. PPT를 처음 만들어 봤다고 한 J의 발표 자료가 가장 훌륭했다. S는 치과의사가 된 자신의 명함을 미리 선보였고, 동창생 할인을 50프로를 해주겠다고 선언하여 아이들이 방청객처럼 환호했다. 탑건을 보고 감명받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로 했다는 K는 사뭇 비장했다. 태권도 관장님이 꿈이라는 M은 초등학교 앞에 태권도장을 개원하면 얼마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자세히 소개했다. 애들이 귀여워서 나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오늘 일정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테라플루를 한잔 마시니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오한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오늘 출근한 건 잘한 일이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월요일이 휴일이라 정말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 퇴근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