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교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Sep 16. 2023

금요일, 퇴근 후

여백을 찾다

마지막 시간인 7교시가 끝나면 나는 조급해진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 위의 노트북을 탁 덮어서 가방에 집어넣는다. 집에 가서 과연 노트북을 펼쳐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매일 가져간다. 교문을 나선 후 담이 유치원으로 차를 몬다. 신호등에 정차하면, 집에 있는 보리에게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건다. 하교 후 피아노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다.


- 보리야, 뭐 해? 식탁 위에 간식 먹었어? 엄마 이제 마쳤어, 담이 데리고 갈게~


유치원은 좁은 주택가에 한가운데 있어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세탁소 앞에 정차하고 후딱 뛰어갔다 올까,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한다. 얼마 전 골목길에서 주차를 제대로 안 했다가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무시무시한 욕을 들은 일이 떠올라서이다. 차를 조금 더 움직여 근처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세우고 유치원으로 뛰었다.


담이는 반쯤 색칠한 종이를 손에 들고 나왔다. 반가움과 섭섭함이 반반 묻어있는 표정이다.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담이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엄마 늦게 왔어? 마치자마자 재빨리 온 건대.

-오늘도 꼴찐데?

-그렇구나. 그래서 속상해?

-응.. 아니, 선생님이랑 색칠놀이했어. 여기, 딸기도 그렸어.

-오~ 우리 담이는 딸기를 좋아하지. 가래떡도 좋아하잖아? 또 뭐를 제일 좋아해?

-음.. 쫀드기. 근데 사람 중에서는 엄마야.


나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서 담이를 와락 안았다.


-나도 사람 중에서 네가 제일 좋아, 내 귀염둥이야.


아이의 귀에다 대고 '언니한텐 비밀이다'라고 말하고 차에 태웠다. 집에 도착하니 보리가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서 떠먹고 있다. 식탁 위에는 쏟은 우유를 대충 닦은 흔적이 역력하다. 입 짧은 보리는 1학년이 된 후로 비교적 식욕이 왕성해졌다. 혼자서도 뭔가를 찾아서 꺼내먹는다. 어릴 적부터 밥을 잘 안 먹어서 늘 애가 탔는데, 이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나도 똑같았다. 편식이 심하고 밥을 잘 안 먹어서 엄마를 속 터지게 했는데. 엄마 마음이 이랬겠구나 싶은 순간이 요즘 부쩍 잦다.


가방과 노트북을 내려놓고 드레스룸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애들은 각자의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서 그리고 칠하고 접고 오리는 중이다. 오늘은 학원도 없으니 집에서 나갈 일이 없구나~  좋구나~ 하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루종일 얼마나 눕고 싶었는지 모른다. 몸을 일자로 쭉 펴서 양 어깨와 날개뼈와 천골과 종아리와 발꿈치가 바닥에 닿자 한숨 내쉬었다. 길고 긴 날숨이었다. 학교에서는 이처럼 누워서 이완할 여유가 없다. 진정 한 줌의 여유도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곳에 있는 9시간 내내 분초를 다투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강도 있고 쉬는 시간도 있으며, 심지어 여직원 휴게실에는 내가 누울 수 있는 흙침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가. 그건 아마 마음의 문제이겠지. 마음에 여백이 없는 나는 늘 긴장상태이다.


내가 직장에서 유독 긴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의외로 몹시 산만하고 빈틈이 많은 인간이다. 하염없이 실수하고 빠트리고 놓친다. '의외로'라고 굳이 쓴 이유는 사람들이 대게 나를 그렇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샘은 되게 차분하신데, 의외시네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겉으로 차분해 보이는 것일 뿐 내적으로는 감정이 널을 뛰고, 판단은 직관적이며 일은 무계획적인, 전반적으로 헐렁한 심성이다. 오늘도 내가 올린 기안들 중 하나는 첨부파일이 누락된 채였다. 또 다른 하나는 제목에 '2022학년도'라고 쓰는 실수를 범했다. 부장선생님이 '샘~ 첨부파일이 없네요~ 이거는 제목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하셔서 다급히 회수 후 재작성을 했다.

수업 들어간 교실에 내 물건을 그대로 두고 오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수업이 끝나고 다정한 학생들이 내 usb와 마우스와 텀블러 따위를 갖다줄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고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대체로 이런 부끄러움과 패배의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지만, 어떤 날은 뿌듯함과 보람과 충만감으로 채워져서 돌아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집에 와서 바닥에 드러눕는 순간, 동요하던 내 마음은 비로소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이 아무도 안 다치고 무사히 다시 집으로 모였으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각자의 놀이에 집중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집에 왔어?

-응

-누워있는 목소리네?

-응, 언제 와?

-곧. 저녁은 뭐 먹지?

-모르겠어.. 뭐 먹지..

-갈 때 피자 사갈까?

-오, 좋다. 저녁은 피자~~ 어서 와~~


나는 남편이 올 때까지 그렇게 거실에 누워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거실 바닥에는 아이들의 가방들과 거기서 나온 소지품들이 나뒹굴고,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그 혼잡함 한가운데 안개킨 빨래처럼 내가 누워있다. 목 스트레칭을 하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주방 식탁이 보인다. 그 위에는 아침에 밥 먹고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그대로 올려져 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금요일이잖아.. 내일의 내가 저걸 치울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오토바이 27대를 훔친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