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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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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Sep 13. 2023

오토바이 27대를 훔친 아이

학교에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현금 수십만 원과 에어팟 5개. 피해액수는 대략 150만 원. 하루 낮동안 학교에서 생긴 일이다. 우리 학교 낮시간 동안 교실 문단속을 그리 철저히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체육시간이나 특별실로 이동할 때 교실이 열려있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급식실에 갈 때도 교실은 주로 열려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전학생 A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A가 전학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전 학교에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강제전학 온 거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런 걸 캐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 교사들은 선입견 없이 아이를 대했고 우리 학생들도 A에게 관대해 보였다.


A는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공부 전혀 하지 않았고 주로 엎드려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다소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 어슬렁거리는 듯 복도 걸어 다녔다. 최근에 A는 우리 학교 '일진'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일진이라 일컬어지는 네댓 명은 지난 학기에 학교 근처에서 흡연하다 걸린 적 있는 요주의 아이들이다. 얘들이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공부에 관심이 없고, 약 들거리고 허세 부리며 능글. 그래도 선생님들마주치면 꾸벅 인사하고, 담임선생님께 애교 있게 구는 아이들이다. 우리는 A가 얘네랑 어울려 다니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도난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그 일진 중 하나였던 것이다. 얘는 A과 가깝게 지냈으므로, 꽤 확실한 심증을 갖고 담임선생님과 학생부에 신고했다.


정황이 뚜렷하다는 것을 확인한 A 학급 담임 선생님은 증거를 잡기 위해 애썼다. 사건 당일 교실에서 수업하셨던 모든 교과 선생님을 수소문하여 A가 수업 중 화장실을 핑계로 교실을 이탈한 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시각을 특정하여 복도 cctv 영상을 확인하였고, A가 본인 교실을 나와 피해자의 학급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확보한 것이다.


A는 학생부로 불려 갔다. 사건에 대하여 묻자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 친구들에게 보낸 카톡에서는 학교쌤들이 생사람 잡는다고 ㅈㄴ어이없고 ㄱ빡친다고 했다. 선생님이 증거를 들이밀어도 끝까지 부인했다. 그냥 교실이 열려있길래 들어가 본 거라고. 자기가 뭐 훔쳤다는 증거 있느냐고 큰소리쳤다.


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해서 사건을 넘기겠다고 하자 A는 그제야 자백했다. 경찰에 가면 자기는 백퍼 소년원 간다고.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오토바이를 27대 훔친 일로 강제 전학을 온 것이었다. 그 이전학교에서도 사소한 도난사건에 연루되어 끊임없이 전학 다닌 이력이 있었다.


학교는 A의 어머니를 출했다. 피해자들에게 현금과 물건을 모두 되돌려주고 대안학교로 위탁을 가기로 결정했다. 피해자는 더 있었다. 1만 원, 2만 원 혹은 4만 원,  금액이 적거나 확신이 없어서 따로 신고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또 있었던 것이다. A는 다 기억 안 나지만 뭐 맞는 것 같다며 자신의 여죄를 인정했다.




아이들의 범행이 예전보다 대담해지고 있다.

작년에 우리 학교로 전학 왔던 또 다른 전학생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폭력 전과가 있었는데, 상반신 전체에 이레즈미 문신을 하고 있었다. 손등까지 타고 내려오는 문신을 교실에서 볼 때마다 섬뜩했다. 그 아이의 사건 개요를 알게 되어 그 잔인함에 기함하던 중, 그는 또 다른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퇴학처리되었다. 우리 학교 내에서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사라져서, 솔직히 안도했다.



우리 교육청은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이라는 모토를 쓰고 있다. 모든 공문서에 쓰여 있는 이 문구를 보며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무섭다. 오늘자 기사에서는 초등학교1학년 교실에서 폭력적인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아이를 제지하 담임교사가 실신했다고 한다. (물론 학교 밖은 더 무섭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뒤에서 돌려차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섭고, 혼자 산책하다가 미친놈이 달려들까 봐 낮에 산에 가기도 무섭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퇴학'이라는 조치는 웬만해서 취해지지 않는다. 대신 전학이나 위탁을 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전학생이 온다고 하면 긴장한다. 단순 전학인가? 강전(강제전학)인가? 전학의 사유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A가 위탁가게 될 학교는 안전할까. A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학교의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A는 오늘 학교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내내 혼자였다. 전학 온 자신을 받아준 친구들의 돈을 훔친 아이와 누가 선뜻 어울리겠는가. 혼자 배회하는 A를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다. 쟤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앞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을 살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A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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