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 Francia
May 14. 2024
담이야,
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처음 맞는 봄이야. 지난 3월에 너는 패딩코트를 입고 첫 등교를 했는데, 오늘 아침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지. 2024년, 낮의 햇살은 눈부시고 저녁에 불어오는 바람은 부드러운 이 계절. 그 속에 여덟 살의 너와 마흔한 살의 내가 있어. 너도 알까?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우리를 스쳐가는지. 엄마는 이 귀한 한때를 붙잡아두고 싶어서 기록한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된 너를 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 마음이 들어. 잠자는 네 얼굴을 들여다보면 아기 때의 눈코입이 그대로인데, 내 아기가 어느새 이렇게 쑤욱 자랐지? 아련하고 낯설고 놀라워. 네가 혼자서 태권도장을 오고 갈 때, 학교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혼자 집에 돌아올 때, 나는 네가 기특해서 마음이 울렁거려. 학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을 때도 깜짝 놀랐지. 네가 선생님을 돕고,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말도 그렇게 의젓하게 한다며? 믿기 어려워서 선생님께
"그럴 리가요, 집에서는 떼쓰고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아기인데요?!"라고 할 뻔했지 뭐야. 앗, 엄마가 청개구리라고 해서 또 삐친 건 아니지?
근데 담이는 아기였을 때부터 청개구리처럼 굴었거든.. 그건 지금도 여전하지. 어제 우리 함께 도서관에 갔을 때 기억나?엄마가 "오늘은 영어책을 좀 빌려볼까?" 하니, 네가 "싫어 영어책!" 했잖아. "그럼 무슨 책 빌릴까?" 물었더니 네가 이랬어. "엄마가 빌리자고 하는 책 말고 다!" 언니와 엄마가 마주 보며 "역시 담이는 청개구리야" 했더니, 너는 "놀리지 마!!" 하면서 왕- 울어버렸지. 화나서 울면서 너는 말하더라. "그래도 엄마는 나 사랑하잖아~~" 암 암. 엄마는 담이가 청개구리라도 사랑하고 울다가 웃어서 엉덩이에 털나도 사랑한다고. 그랬더니 넌 또 금세 깔깔거리며 웃었지. 맞아. 엄마는 담이가 화내도 울어도 이불에 오줌 싸도 사랑해. 샤워 안 해서 냄새 나도, 숨어서 코를 파도 사랑해. 네가 잘 알고 있다시피 말이야.
우리는 매일 싸우고 화해하고 안아주고 뽀뽀하지. 엄마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아침에 담이가 학교 갈 때야. 밥 빨리 먹어, 양치질 아직도 안 했니, 가방은 미리 챙겨 놓으라니까, 어서 양말 신고 나와 언니가 기다리잖아! 이렇게 잔소리를 해도, 너는 현관문 열고 나가기 전에 꼭 엄마한테 와서 쏙 안기잖아. 나는 그 순간이 최고로 행복해. 무릎을 바닥에 댄 채로 작은 너를 꽉 껴안고 말하지. "사랑해 담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건 매일 하는 말이지만 진짜야. 언제나, 항상, 늘, 죽을 때까지 그럴 거니까 절대 잊어버리지 마.
오늘도 학교에 다녀온 너는 간식을 먹으며 종알종알 말했어. 미안하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엄마는 너의 입모양을 유심히 보는 걸 좋아해서 거기에 집중했거든. 할 말은 많은데 단어를 모르고 속도도 안 따라줘서 "어.. 어.." 하며 입을 옴싹달싹 거리는 모양이 못 견디게 귀여워. 나는 들키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웃음을 참지. 며칠 전, 밤하늘에 초승달을 보며 네가 했던 말을 기억해. "저 달이 쑥쑥 피어나서 어.. 어.. 그 동그라미 달이 될 거야."
요즘 담이가 자주 하는 말은 이거야. "엄마, 오늘은 진짜 좋은 날이야."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답은 맨날 똑같아. 월요일은 보드게임 선생님이 사탕을 줘서 좋고, 화요일은 다영이랑 우리 집에서 같이 공부하고 놀아서 좋고, 수요일은 엄마가 학교도서관에 와서 좋고, 목요일은 과학시간에 재밌는 거 만들어서 좋고, 금요일은 태권도에서 뽑기 해서 좋고 토요일은 그다음 날이 일요일이라서 좋고 일요일은 엄마랑 수영장 가니까 좋대. 너의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서 엄마도 참 좋다.
너는 요즘 줄넘기를 아주 열심히 해. 3월 초에는 한 두 개 겨우 넘더니 이젠 쉬지 않고 뛰어. 모아뛰기, 번갈아뛰기, 엑스자뛰기. 이러다가 곧 이단뛰기까지 하겠어. 샤워도 엄마 도움 없이 스스로 하지. 머리감을 때 쓰는 비누, 몸 씻는 비누도 잘 구별하고 말야. 아주 기특한 여덟살이야.
자기 전에 엄마가 마사지해 주는 걸 너무 좋아하는 너. 어느 날은 네가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지. 담이의 작은 손이 내 등을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는데, 어찌나 간지럽고 좋던지. 발바닥 마사지할 때는 엄마가 해줬던 걸 정확히 기억하고 똑같이 하더라. 주먹을 쥐고 뾰족한 부분으로 발바닥을 쓱쓱 문지르는 거. 그때 나는 생각했어. 담이한테 좋은 걸 더 많이 해줘야지. 그러면 담이는 그걸 나누는 사람이 되겠구나.
사랑하는 담이야. 지금 너는 내 옆에 누워서 입을 살짝 벌린 채 자고 있어. 나는 또 잠든 너의 얼굴을 요목조목 살펴보고 있지. 이 모습이 영원하지 않을 걸 아니까. 너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자랄 거야. 조만간 말도 더듬지 않을 테고, 엄마랑 한 침대에서 자지도 않겠지. 친구들과의 우정이 중요해질 테고, 너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되겠지. 직접 세상과 부딪히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울 테고 네 마음을 감당하느라 벅차고 고단한 순간들을 마주할 거야. 힘들 땐 언제든 와서 기대. 꼭 안아줄게.
엄마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어줬을 때 네가 많이 울었지. 눈물이 퐁퐁 멈추지 않아서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정도였어. (날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데, 잘 우는 건 닮았네..) 엄마는 너에게 나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내어주고, 네가 나를 떠나 너의 세계로 나아가는 걸 엄마는 기쁘게 바라볼 거야. 글쎄, 아직 십 년 정도는 남았겠지만 미리 조금씩 준비를 해두려 해. 지금 우리가 지금 겪는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말이야.
엄마도 어릴 적 내 엄마에게, 그러니까 너의 외할머니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 딱 한번. 여덟 살 때 받은 생일 축하 카드였지. 아주 짧은 글이었는데, 그걸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 담이도 언젠가 이 편지를 받으면 기쁘게 보관해 주려나? 붙잡아두고 싶은 순간들이 생길 때마다 편지를 쓸게. 좋은 기억들을 죄다 너에게 남기고 싶다.
사랑하는 내 딸 담이야.
너는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어. 원래 나는 품어주고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너로 인해 누군가를 품고 나를 내어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 덤으로 귀여움의 정확한 의미도 알게 되었지. 내 딸로 태어나줘서 많이 많이 고마워.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시간 속에 또 무엇이 있을까.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서러움도.. 모두 다 사랑 안에 들어있는 거라고 믿어.
내 귀여운 청개구리. 내 아가야.
매일매일 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