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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r 29. 2024

너 정말 나빴다

주말에 동생 가족이 우리 집에 방문했다.

동생 내외에게도 내 아이들과 또래인 딸이 둘  덕분에 우리공동육아라는 목적을 가지고 자주 만난다. 사촌지간인 어린이 넷은 만나면 자기네들끼리 정신이 쏙 빠질 만큼 똘똘 뭉쳐서 논다. 덕분에 어른들은 육아가 한결 수월해진다. 특히 왕언니인 보리가 동생들과 잘 놀아줘서  동생과 올케 무척 흡족해한다.


그날도 여자아이들 사총사는 신나게 놀고 있었다.

놀이방이 딸린 어느 족발집이었고, 우리 어른 은 족발과 보쌈을 먹으며 여유롭게 반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나는 놀이방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넷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담이가 자꾸 언니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담이 표정이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담이가 울면서 나에게로 뛰어왔다.

 

엄마~~~ 언니가 (흑) 여기 꼬집었어 (흑흑) 언니가 (흑) 나랑은 안 놀고 (흑) 자꾸 빈이랑만 (흑) 놀아.. 아까 얼음땡 할 때도 (흑) 자꾸 나만 술래 하라고 하고 (흑) 나는 계속 술래만 하고~~~~ 엄마 언니 너무 나빠 으아앙~~~~~~



보아하니 상황은 이러했다.

보리는 자신을 잘 따르는 7살 사촌 동생 빈이랑 둘이서만 놀고 싶었는데 제동생 담이가 자꾸 같이 놀자고 해서 귀찮았다. (이 놀다 보면 둘둘 편이 나뉘는 구도가 종종 생긴다.) 언니가 이리저리 망가며 자리를 옮겨 다니자 담이는 서러워졌다. 그러다가 가 담이를 툭 치면서 뛰어갔고 담이는 화가 났다. 담이는 언니에게 다가가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화가 보리담이 볼을 힘껏 꼬집었다.




몸을 들썩거리며 서럽게 우는 담이의 볼에는 빨갛게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상처를 보아하니 흉터가 남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나는 꽃처럼 화가 났다. 리는 소에도 제 동생을 살살 약 올릴 때가 있었다. 연년생 동생 잘 보살피기는커녕 경쟁상대로 보고 질투하며 못살게 굴었다. 나는 우는 담이를 안은 채로 보리를 질타했다. 언성을 많이 높이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도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였다.


보리! 때리거나 꼬집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언니가 자기 동생은 따돌리고 사촌 동생만 챙겨줬으니 담이가 얼마나 속상했겠어. 어쩜 이런 행동을 하지? 너 정말 나빴네? 다른 사람이 얼굴을 이렇게 꼬집으면, 너는 기분이 어떻겠어?! 네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알겠니?



보리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뚝뚝 떨어졌다.  훌쩍거리며 나에게 '잘못했어요' 동생에게 '미안해'하고 사과했다. 그런 언니를 보고 담이는 어느새 눈물을 뚝 그쳤다. 옆에 있던 남편이 슬쩍 다가와서 우는 보리를 안아줬다. 내 동생과 올케가 바로 맞은편에 앉아 약간 난감해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화가 난 채로, 동시에 부끄러워졌다. 보리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외삼촌 외숙모 앞에서 엄마한테 크게 혼난 것이다. 그 점이 특히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그 순간 보리가 너무 미웠다.




연년생 자매를 키우며 나는 종종 (주로 자매가 치고받고 싸울 때) 아이들 마음 읽어주기에 실패하곤 한다. 이런 폭력적인 행동 이면의 마음을 공감해 줬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 마음과 행동은 별개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그런 상황과 마주하면 이성을 놓고 아이를 비난하는 독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번에도 그랬다. '너의 행동이 나빴다'라고 해야 했는데 '너 정말 나빴다'라고 아이의 인격 자체를 비난했다. 아이에게도 속상한 마음과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날 밤 내내 자책감에 시달렸다.





영화 <작은 아씨들>에 이런 장면이 있다.

언니 조(Jo)가 끝내 동생 에이미(Amy)를 파티에 데려가지  상황이었다. 조르고 졸랐지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에이미는 조가 숨겨놓은 글을 찾아내 불태워버린다. 에이미는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이 글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조는 분노가 극에 달아 에이미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언니를 최고로 속상하게 만들고 싶었어!

하! 나는 이제 평생 너랑 말 안 할 거야!



다음날도 화가 풀리지 않은 조는 에이미를 노려보며 없는 사람 취급한다. 친구와 얼음 스케이트를 타러 나간 조. 에이미는 같이 놀고 싶은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으로 언니를 따라 나선다. 조는 뒤에 동생이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얼음이 얇은 곳에서는 물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에이미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와장창- 에이미는 깨진 얼음 사이로 물에 빠지게 되고, 조는 미친 듯이 달려가 에이미를 구하고 울면서 껴안는다.


미안해, 미안해 내 동생.. 내가 널 죽일 뻔했어.. 사랑해. 에이미.



자매는 서로를 죽일 듯 미워지만, 오래지 않아 동생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달았고 언니도 동생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비난과 책망은 없었다. 아이들은 어리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분명히 갖고 있다.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리고 가장 괴로운 것도 자신이다.  또한 어릴 적 언니와 심하게 싸우고 미워했던 적이 있다.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우리는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작은아씨들>,2020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돌이켜보면 유년 시절에 부모란 그 어떤 존재보다 절대적이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 '넌 이기적이구나'라는 말을 듣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은 꽤 오랜 시간 내 뇌리 속에 깊이 박혀있었다. '난 이기적인 사람이다'라는 자의식이 형성되었을 정도로 강렬하게 말이다. 나에게 직설적으로(그리고 공개적으로) 비난받았던 보리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헤아본다.






다음날, 보리와 담이는 언제나처럼 까르르 거리며 즐겁게 놀았다. 담이의 얼굴에 습윤밴드를 붙여줬더니 상처도 빨었다. 밴드 붙인 얼굴로 학교에 다녀온 담이가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엄마, 근데 이 밴드. 좀 작은 거 붙여주면 안 돼? 아니 그냥 떼면 안 돼요? 친구들이 자꾸자꾸 물어봐. 진우도 물어보고 윤아도 물어보고 서현이도 민서도.. 학교 선생님도 물어보고 줄넘기 선생님도, 배드민턴 선생님도.. 그리고 태권도 관장님이랑 사범님도 물어봤어.. 휴.. 나 계속 똑같은 말 하기 너무 힘들어..

-아 정말? 뭐라고 말했는데?

-응 처음엔 언니랑 싸웠다고 했는데.. 더 놀라길래 나중에는 그냥 부딪혔다고 했어.



나는 담이가 겪었을 상황이 그려져서 웃었고, 보리는 짐짓 멋쩍게 웃었다. 조심스레 밴드를 떼보니 상처가 거의 다 나아있었다. 흉터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빠르기도 하다. 부디 마음의 회복력도 속도를 내기를. 보리가 들었던 모진 말을 다 녹여낼 만큼 따뜻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어줘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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