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 소설이 어렵고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소설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했다. 둘 다 맞다.아마이 책을 펼치는 마음이, 그것이 향하는 지점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무엇을 읽을(얻을, 알아낼)것인가' 혹은 '이 책에서 나는무엇을 읽어야 하는가'와 같은 마음으로 문학을 읽지는 않는지 돌이켜보자. 이 마음가짐은 우리가 통과해 온 학습 환경을 감안했을 때 지극히 범상하지만, 순수 문학을 읽는 자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독서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독자가 문학과 진실로 친해지는 것은 방해한다. 문학은 읽음으로써 알고 배우고 깨닫기 이전에 '느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느낀다는 건 인간의 본유적 특성이자 근원적능력이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를 경험한다. 웃기지 않고 화도 안 나고 슬프지도 않으며 음식을 먹어도 맛도 모른다. 그러한 무감각의 상태는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지기에위험한 것이다.
어떤 시가 어렵게 느껴질 때, 그 시를 쓴 사람의 마음에 무심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국어시간에 해왔듯 어떤 시어가 상징하는 바를 애써 찾아내려고 했던 건 아닐까.문학은 그저 읽고, 느끼면 그뿐이다. 내 느낌을 스스로 감각하면 된다. 좋은 작품일 경우 그 느낌은 곧 어떤 사유로 이어진다. 모호한 것을 검색해서 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 저명한 문학평론가가 쓴 작품 해설을 읽고 떨떠름하게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내 느낌을 타인의 해석에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읽으면 나에게 와닿지 않는 시는 있을 망정어려운시는 없을 것이다.
<희랍어시간>을 읽으며 처음엔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설의 첫 장은 보르헤스의 묘비명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로 시작한다.(뭔 소리지?) 텍스트에는 희랍어 문자가 활자로 등장하고, 중간태라는 낯선 문법이 설명되며,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언급된다. 그뿐 아니다. 각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는데 주인공 남녀의 이름이 끝끝내 불리지 않으므로 누구의 이야기인지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으면 도통 무슨 얘길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물음표를 품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생생하고 감각적인 장면 묘사와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면 언어를 오가며 혼란을 느끼던 찰나, 나는 깨달았다.그래. 한강작가는 시인이었지. 그때부터시를 읽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자세도 편하게고쳐 잡았다. 문장을 독해하고 문맥을 살피는 걸 그만두고 촉수를 곤두세웠다. 그때부터 나는 선득할 만큼 외롭고 고독했다. 심장이 느껴질 만큼 쓸쓸하고 아팠다. 후반부에 가서는 걷잡을 수 없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아내고 코를 풀었다.
책 속 인물의 행동이 이해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그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작가라면 그 인물이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독자를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가 독자의 감정을 움직이게 해 줬다면(이것이 선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 전체에 별처럼 흩뿌려져 있는 단서와 개연성은 독자가 찾아야 한다. 내가 왜 울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밝히고 싶다면 말이다.
갑자기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있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중인 남자가 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희랍어 수업을 하는 강사이고,
그녀는 그 수업의 수강생이다.
그녀는 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마치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이 갑자기 고기를 못 먹게 된 것처럼. 언어에 남다른 영민함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말' 자체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시를 쓰고, 책을 내고, 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할 만큼.
모든 언어가 낱낱이 들리고 읽히는데, 입술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없다. 육체를 잃은 그림자처럼, 죽은 나무의 텅 빈 속처럼, 운석과 운석 사이의 어두운 공간처럼 차고 희박한 침묵이다.
p.22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성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폐활량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p.57
여자는 어린 시절에도 말을 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만 그녀에게 어떤 말은 날카롭고 폭력적이고 잔인했다. 너는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어, 하는 어른들의 말. 어떤 감정들은 언어화되면서 더욱 선명하게 고통스러웠다. 때로 여자는 자신의 입에서 거미줄처럼 뽑아져 나오는 말과 글도 증오했다. 말을 잃어버린 것은 그것에 대한 그녀의 저항이었다.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눈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물들의 상이 맺히고, 그녀가 걷는 속력에 따라 움직이며 지워진다. 지워지면서, 어떤 말로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다.
p.75
남자에게는 어릴 적 독일에서 살던 시절에 연인이 있었다.
그는 앞으로 시력을 잃을 거라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그의 연인은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농인이었다. 함께 할 미래를 꿈꾸던 남자는 연인에게 말했었다.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면 우리가 지금처럼 소통을 하기 어려워질 텐데, 당신이 말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겠느냐고. 그러자 연인은 그를 매몰차게 노려보았다. 다음날 미안하다고 찾아간 그의 얼굴을 때렸다. 심하게 때렸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누군가가 일생동안 품고 살아왔을 내밀하고 고유한 고통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 사이에는 칼이 있다.
왜 희랍어일까.
구어로 말할 수도 없고,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오래전에 죽은 언어를.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는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 낀다.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 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 단어들뿐이다.
P.66
두 사람이 잠자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수업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수업이 시작된 뒤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사무실 앞에서 차츰 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낯익은 것이 되었다. 그의 평범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고유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변화에 대해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p. 103
희랍어 교실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그들은 어떤 일을 계기로 접촉한다.
작은 새를 구하기 위해 어두운 지하로 내려간 남자가 안경이 깨지고 손을 다쳤을 때, 여자가 그를 구한다. 그녀는 말없이 그를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준다. 남자는 계속해서 혼자 말하고 여자는 가끔 검지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대답을 쓴다. 그는 '거기서 듣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길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늦은 밤이었다.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라고 남자가 말하자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쓴다. 아니요.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손가락끝과 손바닥의 접촉. 바투깎은 여자의 손톱은 그의 손바닥에 어떤 통증도 남기지 않았다.
남자가 잠든 사이 돌아갔던 여자는 아침에 다시 찾아온다. 비가 오니 자신이 혼자 안경점에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그의 손바닥에 쓴다. 남자는 문득 다치지 않은 손을 뻗어 여자를 안는다. 입을 맞춘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한다. 그녀가 지난밤 집에 돌아가서 무얼 했는지. 아침에 남자의 집에 오기 전에 어디에 다녀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하여 지금 어떤 마음인지. 맞닿은 심장과 입술은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다시 말을 하기 위한 마음을 다잡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첫음절을 되찾고자 한다. 서로의 연약함을 조심스레 보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따뜻한 빛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감당하며 살아갈 어둠의 부피에 관한 것일지모른다. 인간은 각자의 슬픔을 가진 고독한 존재이다. '이해한다'는 짧은 말로 타인의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다정한 눈빛이 있길 바란다. 서로의 어둠을 알아보고 서로 안쓰러워하고 서로 감싸주는 것, 그것이 인간이 속성이라면 이 세상은 온전하다. 인간은 홀로, 또 그렇게 서로 기대어 산다. 그러기에 삶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파편으로 다가와, 파편인 채 그대로 흩어진다. 사라진다. 단어들이 좀 더 몸에서 멀어진다. 거기 겹겹이 무거운 그림자처럼, 악취와 오심처럼, 끈적이는 감촉처럼 배어 있던 감정들이 떨어져 나간다. 오래 침수돼 접착력이 떨어진 타일들처럼. 자각 없이 썩어간 살의 일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