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 Francia
Nov 01. 2024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주로 책을 선호하지만 이따금씩 다른 매체 - 영화, 드라마, 무대 공연 - 를 보고 압도되곤 한다. 정교한 연출과 시각적인 미감, 배우의 연기력 같은 요소들이 잘 어우러지면 그 작품 속에 고스란히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채로 관람하였지만 영화 자체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충분히 불편하니 이제 그만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 동시에 뭔가 꽁꽁 싸매고 있던 것을 죄 까발려 충분히 시원하다는 느낌. 영화 속 인물들을 보는 나의 내면도 충분히 파헤쳐졌다.
언뜻 보면 상류층의 위선과 도덕성 결여를 비판하는 듯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시공간적 배경을 초월한다 해도 본질은 다르지 않을 것만 같아서 씁쓸하다. 그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이들의 과오는 일정 부분 부모에게서 비롯한 것일 텐데. 그럼 그 부모가 뒤집어쓴 위선의 출처는 또다시 그 윗세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지 돌아볼 일이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한다는 한강 작가님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인간이 어떤 행위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지점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며 <소년이 온다>의 영어 제목을 <Human Acts>로 정했다는 말. <보통의 가족>의 원제인 <The Dinner> 도 상징적이라 좋지만, 우리나라 영화의 제목이 보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던져주는 듯하다. 가족이라는 집단성이 인간을 다층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인간이 철저히 개별적인 존재였다면 달랐을까.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신념이 얼마나 편향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도.
영화에 설득당한 데에는 배우의 역할이 컸다. 다작을 하는 배우는 어떤 극에 등장해도 평소 그가 가진 후광을 잃기 어려운데, 그로 인해 나를 혼란에 빠트린 건 김희애 배우였다. 극 중 그녀는 열등감과 우월감, 이기심과 자기기만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반면 수현 배우의 역할은 극 초반에는 클리셰적으로 설정된 듯 하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달리 보인다. 장동건, 설경구 배우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인물 내면의 격렬한 감정을 따라갈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편치 않다. 내 깊숙한 곳을 누가 자꾸 건드리는 것만 같다. 누구를 비웃고 싶고 누구를 비난하고 싶지만 선뜻 그러기가 어렵다. 더욱이 부모라면 마음이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