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 70세를 넘긴 나의 엄마도 모처럼 전문 메이크업을 받고 카메라 앞에 섰다. 화기애애한 스튜디오 분위기 속에서 사진을 찍고 난 후 결과물을 확인하는 시간, 우리는 거대한 모니터가 있는 방으로 안내되어 이제 막 찍은 사진들을 감상했다. 나는 그중 잘 나온 사진을 골라보려고 하는데 엄마는 옆에서 한사코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것이다. 주름이 너무 많다, 화장이 이상하다, 배는 또 왜 저렇게 많이 나왔냐.. 끊임없이 사진 속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휴.. 내가 저렇게 많이 늙었네. 나이 드니 뵈기 싫다."
소싯적에 엄마는 외모가 출중했었다. 나이가 들면서도 여전히 미용에 관심이 많아서 각종 성형 시술도 꾸준히 받아왔다. 그 덕분인지 실제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데도 정작 본인은 성에 차지 않는 듯하다. 일흔에 접어들며 살이 찌고 노화를 온몸으로 겪기 시작하면서 약간 자포자기한 것도 같다. 티브이에 나오는 노년의 여배우들을 보면서도 엄마는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곱더니.. 저 여자도 저렇게 할머니가 됐구나.늙으니 참 보기 흉하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외모에 치중하게 되고 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게 바로 나다. 그대로도 예뻤을이십 대 때도 집을 나설 때면늘풀메이크업을 했던 나였다. 삼십 대 때 남들보다 일찍 새치가 생기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했다. 돌아보건대 일생을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며 살아왔다. 우리 모녀가 다소 유별났을지도 모르지만 사회 전반에는 이런 분위기가 있다. 늙는 걸 끔찍하게 두려워하고 젊음을 칭송하는 문화말이다. 사람들은 더 어려 보이길 원하고 노화를 늦추기 위해 애쓴다.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성형수술 관련 기술이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것일 테다.
여기 76세 이옥선 작가가 있다. 자식들은 장성하였고 남편과는 사별한 그는 요즘이 자신의 '골든에이지'라고 말한다. 더 젊어지고 싶은 소망 같은 건 전혀 없는데 그 이유를 '젊어져 봐야 다시 또 노화의 시기는 오게 마련인데 뻔히 아는 그 짓을 왜 또 한 번 더 할까나 싶다'라고 시원하게썼다. 듣고 보니 수긍된다. 작가는 50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오며 아들 딸 길러내고 남편 뒷바라지를 한 평범한 할머니이다. 평생 육아일기 말고는 글을 써본 적도 없다고 한다. 다만 그는 독서광이었다. 수십 년간책 읽는 것을 즐겨서인지 오래 축적된 삶의 경험 덕분인지 글이 술술 써졌다는 초보 작가이다. <즐거운 어른>이라는 제목의 이 산문집을 읽으며 나는 순수하게 즐거웠다.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하며 기쁘게 안도했다. 읽는 내내웃음이 터졌고, 어떤 대목에서는 울기도 했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노년이라는 시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이 세상이 젊은 사람 위주로 돌아감으로 인해 느껴지는 소외감도 있다.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삼십 대이고, 매체의 광고 모델들은 죄다 아이돌 가수 같은 청춘들이다. 교사인 나는 학생들이 젊은 신규교사들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걸 보며 어쩐지 서운했다. 내가 새내기 교사였을 때는 당연히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사십 대에 접어든 어느 날, 나는 문득 이제 새파란 청춘들에게 세상을 내어주고 뒷방으로 물러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스산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전성기는 진작 끝났고이제 그냥 아줌마일 뿐이며곧 늙은이가 되겠지 싶었다. 하물며 60대, 70대, 그 이후의 삶이라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혹여 누군가 이 같은 생각에 울적해한다면 나는 그에게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할 것이다. <즐거운 어른>에는 나이 드는 것에 관한 좋은 점이 총망라되어 있다. 늙어서 좋은 게 이렇게 많았다니,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을 정도다.
돈을 아껴 모아 집을 사야 할 일도 없다. 꼴 보기 싫은 상사가 있는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 같은 것도 안 해도 된다. (중략) 남편 저녁밥상에 뭘 올릴지 골치를 썩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 지금 나는 팔자가 늘어진 최고의 인생 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나 싶다. 아니 어린 시절에도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 공부나 시험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이니, 지금이 더 나은 시절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롯이 나의 생각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도 되는 인간으로서 누구도 부럽지 않고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그야말로 황금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노년 세대를 보며 품는 오해들이 있다. 노인이 되면 일상이 얼마나 적적할까, 다 늙어서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걱정들. 또 할머니들은 언제나 자식 손주를 그리워하고 기다릴 거라는 착각들. 이 주체적이고 솔직한 작가는 이제껏 그 어떤 할머니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준다. 혼자 사는 노인도 매일 바쁜 일상- 운동과 목욕탕과 친목 모임 참석과 유튜브 시청 등등 - 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과 따라서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자식들이 마냥 반갑지 않다는 진실 같은 것들이다.나는 문득 주말에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하고 엄마집에 가서 이박삼일씩 뭉개며 집밥을 얻어먹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분명 '너희들이 오니 썰렁한 집이 북적북적하고 좋다'라고 하긴 했지만 때마다 십 인분의 식사를 차리고 치우길 반복하며과연 좋기만 했을까? 나는 엄마말을 곧이곧대로, 아니 내 편할 대로 듣고 넘긴 건 아닌지 반성했다.
아직 노년에 진입한 나이는 아니지만 나도 나이 먹는 것이 좋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걸 깨달을 때이다. 나 자신과 함께한 시간이 쌓이며 나는 나와 친해졌다. 이를테면 나는 내가 꽤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 편안한 혹은 불편함을 느끼는 지를 세심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 수월해졌다. 소모적인 모임 참석을 줄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주변 상황도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영유아였던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니 아무래도 여유가 생겼다. 직장 생활과 가사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이 벅차지만 적어도 젊은 시절의 질풍노도적 혼돈과 불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희망적이다.
작가는 또한 우리가 매사에 지나치게 노력하고 애쓰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아왔기에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OECD국가 중 자살률 부동의 1위가 대한민국인 것도 사실이다. 과도한 성과주의와 능력주의는 경쟁을 부추기고 인간을 소외시켰다. 실제로 주위를 돌아보면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으나 남몰래 심신이 고통받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젊었을 땐 화려한 면만 보고 부러워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제 그 이면의 고통도 보인다. 인생에 거저 얻는 것은 없다는 걸 나이 들며 배운다. 그렇게 애면글면하며 살면 나이 들어서 아프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너무 최선을 다하지는 말자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고 동시에 위로받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남에게 보여주려고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 사회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가치로 어머니를 상징하고 모성을 포장해 왔다. 그런 맥락 속에서 '할머니'라고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뜻하게 품어주는 푸근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꼭 그런 할머니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작가는 따뜻한 할머니라기보다는 한 명의 독립적이고 단단한 여성이다. 꾸준히 운동하고, 수십 년 간 책을 읽으며 지식을 체화하고 지혜도 겸비했다. 덕분에 편견에 휩싸이지 않고 관습에 저항할 줄 아는 유연한 태도를 지녔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면서 세태를 통찰하고 잘못된 것을 일갈하는 모습이 더없이 호쾌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무한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이가 드니까 어쩐지 스스로 베짱이 두둑해지면서 잘 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부럽지 않았다.
스스로 베짱이 두둑해지면 부러울 것이 무엇이랴. 나도 그저 책 읽고 글 쓰며 충족감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 모든 건 건강해야 가능한 것이니 물론 운동도 하면서! 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고 했다. 우리가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주위의 시선으로 자신을 검열해 온 까닭이다. 나를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고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며 사는 건 이제 피곤하다. 끝이 있기에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다가올 노화를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런 넉넉하고즐거운 마음으로 노년을 맞이한다면 그것 또한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더 이상 화장에 공을 들이지도, 뿌리염색에 집착하지도 않는 요즘의 내가 나는 퍽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