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주말 오후.
가족들과 칼국수와 콩국수로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 길에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집 앞 도서관에서 보낸 도서반납 안내메시지. 내가 대출해 간 엘레나 페란테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의 반납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단다. 어라? 나 이 책 반납하고 왔는데?? 도서관에 마지막으로 갔던 열흘 전쯤이 번뜩 떠올랐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1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2층 열람실에서 완독하고 반납한 뒤 2권을 빌려왔었다. 지금 2권을 한창 재밌게 읽고 있는데, 1권을 반납하라니. 아무래도 도서대출반납기계가 또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다.
몇 해 전에 이런 소동을 겪어보아서 안다. 그땐 집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시립도서관이었다. 열댓 권의 어린이 책을 한꺼번에 반납했는데, 며칠 뒤 반납독촉문자를 받은 것이다. 나는 나를 못 믿는 편이라서, 크게 당황했었다. 그 책이 집에 있을까 봐 온 집안의 책장을 다 뒤졌고, 거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뒤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도서관에 전화해서 읍소했다.
-저.. 제가 책을 반납한 것 같은데, 반납이 안되었다고 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는 책인데요..
전화를 받은 도서관 직원은 차분하게 나의 대출내역을 확인해 보고 말했다.
-네, 여러 권 한 번에 대출 반납하셨고 반납하실 때 이 책만 누락되었네요, 혹시 모르니 저희가 이 책을 서가에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심한 건망증으로 자주 실수를 범하는 나는, 게다가 작은 일로도 몹시 괴로워하는 나는 그날도 자책의 고통을 느끼며 도서관에 책을 보상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그 책이 서가에 꽂혀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의 안도감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집 앞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마치 상대의 실수를 너그러이 품겠다는 듯, 나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제가 반납한 도서가 반납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가에 한번 찾아봐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꽂혀있으리라.
이런 일이 간혹 생긴다는, 불편드려 죄송하단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없단다.
-그 책이 거기 없다고요??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책은 최근 베스트셀러도 아니고, 외국문학 코너 맨 아래 칸에 꽂혀 있는, 두껍고 낡은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누가 지금 그걸 열람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전화기 너머 직원의 목소리에서도 약간의 당황과 난처함이 묻어났지만, 그는 시종일관 친절했다.
-네, 열흘 전 오셔서 빌려가신 기록이 있는데 반납기록은 없네요, 저희도 이 책을 추적해 볼 테니, 이용자님께서도 호옥시 모르니 댁에 한 번만 더 찾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옥시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무안함과 미안함이 느껴졌다. 상대방의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리라.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내 침실 협탁 위에 뒤집힌 채 놓여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나폴리 4부작 제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응?? 이게 2권이었어? 그 책이 내 방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1권과 2권의 제목을 제대로 착각했고, 도서관에 전화까지 해서 “반납했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날 내가 반납한 건 1권 <나의 눈부신 친구>였잖아, 이 바보멍청이야. 으이구. 어쩌자고 그렇게 확신했을까. 부끄러움이 우박처럼 쏟아져내렸다.
그 순간, 그날 낮에 가족과 함께 식사한 식당에서 겪은 작은 해프닝이 떠올랐다. 남편은 시원한 걸 먹고 싶다며 서리태콩국수를 주문했었다. 얼음 띄워진 콩국수를 후루룩후루룩 절반쯤 먹었을 때, 조금 전 음식을 가져다주신 직원분이 쭈뼛쭈뼛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서 하는 말.
-손님, 제가 아까 음식 나갈 때 깜빡하고 잣을 안 넣고 드렸어요. 주문이 갑자기 밀려서 실수를 했어요. 지금이라도 잣을 좀 넣어드릴까요? 죄송합니다.
남편은 뭐 괜찮다 했고 나는 웃으며 잣을 넣어달라고 했다. 직원분은 거듭해서 사과+변명을 하며 다진 잣을 가져다주셨고, 잣 한 스푼을 넣자 콩국물은 한층 고소해졌다. 이 식당, 서비스가 뭐 이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늦게나마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그 태도에 신선함을 느꼈다. 내가 직원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실수한 것을 깨닫고는 흠칫 놀라 식은땀을 흘렸을 것 같다. 그런데, 손님이 맛있게 잘 드시고 있는 것 같다면? 슬그머니 모른 척했을까, 아니면 곧장 사과하고 바로잡았을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반납하러 가면 데스크 직원분을 만나 뵈야겠다. 이 책을 추적하고 있겠다 하셨으니, 행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지난 주말에 전화해서 책 반납했다고 말한 그 사람이라고, 집에 찾아보니 책이 있었다고, 혼선을 끼치고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할 것이다. 나의 부끄러움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테지만 잘못을 인정한 뒤 느껴질 뒷맛은 잣 한 숟갈처럼 고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