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돌 씹어 먹는 아이

당신의 비밀은 무엇인가요

by La Francia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인 두 딸과 집 앞 도서관에서 만난다.

내가 미리 가서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굣길에 곧장 그곳으로 온다. 어린이들은 날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어서 빨리 엄마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오늘 자신이 만들었거나 썼거나 그린 것, 때때로 누군가에게 받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조용한 도서관에서는 맘껏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꾹 참고 책부터 고른다. 오늘 자기전에 우리가 읽을 책들을, 넣었다 뺐다하며 신중히 선택한다. 그렇게 각자의 대출카드로 다섯권씩 대출을 하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둑터지듯 말문이 터진다. 서로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아옹다옹이다.



그날밤 침대에서 읽었던 <돌 씹어 먹는 아이>는 둘째 담이 고른 책이었다.


주인공은 돌 씹어 먹는 아이이다. 돌을 입에 넣고 굴리고 와작 씹으면서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의 기쁨은 가족들에겐 비밀이다. 자신이 돌을 먹는 걸 알면 가족들이 실망할테니까.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다. 긴 여행끝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돌을 먹는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며 두근거리고, 안도한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반겨주는 가족들에게 용기 내어 말한다. "나는 돌 씹어 먹는 아이예요."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주저하며 말한다. "나도 할말이 있어. 난 사실 흙 퍼먹는 아빠야." 엄마도 말했다. "나는 녹슨 못과 볼트를 먹어." 누나는 말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지우개를 먹어." 가족들은 오랜 시간 담아 둔 눈물을 다 쏟아낸다.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숨 푹 잔 뒤, 가족들은 계곡으로 소풍을 간다. 돌과 흙과 못과 지우개로 도시락을 싸서. 서로의 음식을 먹어보라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지만 정말 멋진 식사였다.


책을 덮으며 담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 이상한 가족이네.

나도 말했다.

- 그러게, 특이하다 그치.


인간은 모두 고유하다는 것.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안전한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책의 메세지를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별다른 생각 없이 다른 책으로 손을 뻗는 담에게 슬쩍 말을 붙여보았다.

- 그런데 담아. 사람은 누구나 비밀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가족들에게도 말 못할 자신만의 특이한 점 같은 거.


아이는 말없이 눈을 굴렸다. 나는 한발짝 더 다가갔다.

- 담이는 혹시 그런거 없어? 말하지 못한 비밀?


한참 말이 없던 아이가 입을 뗐다.

- 엄마, 나 말하면, 안 혼낼거야?

- 안혼내지. 지켜줘야지, 너만의 비밀인데.

- 나 사실은.. 도둑질을 했어.



오호라.. 어떤 이야기일까.



- 아, 그랬어?

- 응, 나 일곱살 때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젤리, 기다란 젤리있잖아, 그걸 나눠줬었거든. 그게 너무 맛있어서 내가 한번에 다 먹었은거야. 또 먹고 싶었어. 근데 서우가 그거를 안먹고 자기 가방에 넣는거야. 그래서 내가 놀이시간에.. 서우 몰래 그거 빼서 내 가방에 넣어놨어.

- 아,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됐어?

- 근데 조금 이따가 서우가 자기가방에 젤리가 없어졌다고 울었거든.. 그래서 선생님이 친구들 가방을 한개씩 다 열어봤어.

- 아..그래서 선생님이 담이 가방에서 젤리를 발견하셨어?

- 응, 그래서 선생님이 옆방으로 데려가서 나 혼났어.

-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나?

- 응 다시는 그러면 안돼. 이렇게 말했어.

- 그랬구나. 담이 그때 기분이 어땠어?

- 나 사실은 너무 무서웠어. 숨고 싶었어. 그래서 엄마한테 말도 못했어.



아이가 일곱살 때라면 2년전 일인데, 금시초문이다. 유치원 이후로 만난 적 없는 친구 서우의 이름을 말한 것도 처음이다. 이 기억이 갑자기 소환되었다는 건 아이가 오래 품어 온 이야기였다는 거겠지.

내가 예상한 방향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이는 무척 심각한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조금 걱정스러웠고(얘가 도벽이 있었던가)약간 혼란스러웠다(혼내야 할 것 같은데 혼 안낸다고 이미 말해버렸다). 선생님이 친구들 가방을 하나하나 열어보았을 때 아이가 느꼈을 초조함과 두려움이 짐작되어 짠하고 웃기기도 했다. 아직 어리기만 한 내 자식의 모든 것을 알 것 같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 담아, 마음속에 숨겨왔던 비밀을 엄마한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말하고 나니까 기분이 어때?

- 가벼워졌어. 얘처럼.

- 그렇구나. 다음부터 훔치고 싶을 만큼 갖고싶거나 먹고싶은게 있으면 꾹 참고 집에와서 엄마한테 얘기해.

- 응. 근데 엄마는 없어? 비밀??

- 아, 엄마는 말야.. 있지. 사실은 어릴 때, 학교다닐 때 꾀병 부려서 학교 안 간 적이 몇 번 있어.

- 진짜??

- 응.

- 안혼났어?

- 응, 안 들켰거든.

- 오... 엄마가 꾀병을...

- 응, 너는 그러면 안된다.

- 왜?

- 왜긴, 엄마는 그런 거짓말을 다 알아내거든.. 해봤으니까.



책의 이야기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 입밖에 내지 않았던 오래묵은 비밀을 공유했다. 아이는 커가면서 무성히 많은 비밀을 만들테고 나는 그걸 다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만은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감각만큼은 가슴 깊이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날 밤 우리는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푹 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