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5시, 비 내리는 기차역. 우리 세 모녀는 KTX 상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대구. 나의 남동생, 아이들에겐 외삼촌 집이다. 그 집에는 아이들과 각별한 사이인 이종사촌 자매가 있다. 내 딸들은 열 살, 아홉 살. 대구 조카들은 여덟 살, 여섯 살. 올망졸망 모인 여자아이 넷은 참 잘 놀고, 물론 종종 잘 싸우기도 한다. 그 덕분에 어른들도 편해서 우리는 자주 왕래한다.
지난 주말에는 동생네 가족이 우리 집에 왔고, 이번 주말엔 우리 아이들이 대구에 가기로 했다. 이번 방문의 특별한 점은 바로 ‘기차를 탄다’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특별한 건, 아이들끼리만 기차를 탄다는 것이다!
울산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로 약 30분 거리지만, 지금껏 자매만 기차에 태워 보낸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지난주에 헤어질 때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울었고, 다정한 올케가 제안했다.
“얘들아, 다음 주말에 대구에 놀러 올래? 보리랑 담이랑 기차 타고 오면 외숙모가 기차역에 나가 있을게!”
담이는 흔쾌히, 보리는 약간 망설였다. 그러자 담이, 동생이 언니를 졸랐다.
“언니~~ 가자 우리, 제발! 외숙모가 나온다잖아. 우린 할 수 있어, 언니!!”
이렇게 성사된 어린이들의 첫 기차 여행.
세찬 비가 내리는 플랫폼. 아이들은 조용히 내 양옆에 앉아 있었다.
“공주님들,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하고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담이는 “좋아요!” 했고, 보리는 “좋은데... 긴장돼요.” 했다.
“삼촌이 벌써 기차역에 나와 있대. 동대구역 도착 방송 들으면 내리면 돼. 문 앞에 삼촌이 기다릴 거야. 알겠지?”
기차가 도착하고, 줄 서서 탑승하는 동안 나는 보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는 너희 자리에 앉는 것만 보고 바로 내려야 해. 알지?”
“그렇게 말하니까 더 무섭잖아, 엄마!”
무서웠구나. 괜찮아, 걱정 마. 그렇게 말해줄 새도 없이 나는 기차에서 재빨리 내렸다. 내가 내리자마자 문이 닫히고, 기차가 떠났다. 쌩— 눈앞에서 내 아이들이 탄 기차가 사라지고, 빗소리만 남았다.
나는 이제 자유다. 그것도 무려 2박 3일! 얼마나 바랐던 해방감인가. 그런데 예기치 못한 허전함이 밀려왔다. 내 양팔에 매달려 있던 아이들이 없어진 지금,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했다.
괜히 기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하릴없이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다, 보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리야, 뭐 해?”
“응, 엄마. 가고 있어.”
“안 무서워?”
“조금 무서운데… 괜찮아. 담이랑 도블 할 거야.”
기차에서 보드게임을 하겠다고 또 챙겨갔구나. 나는 주차장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차에 올라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보리야, 뭐 해?”
“엄마, 자꾸 전화 안 해도 돼. 우리 잘 내릴 수 있어. 이제 꼭 할 말 있을 때만 전화해.”
“…어. 그래, 알았어.”
그래. 열 살이면,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지. 잘할 거야. 걱정, 안 해야지.
동대구 도착 시각이 다 되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애들 잘 도착했어.”
비로소 나는 차를 출발했다.
보리가 처음 혼자 학교에 가던 날이 떠오른다. 나는 창밖으로 그 작은 등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나 없이도 아이는 점점 더 멀리 간다. 제 동생을 데리고, 용감하게 세상으로 나아간다.
아이의 모든 ‘처음’을 나 역시 처음 겪는다. 불안하고, 기쁘고, 섭섭하고, 자랑스럽고, 아쉽고, 아련한 마음으로. 오늘의 감흥도 언젠간 희미해질 것이다. 아이 혼자 학교 가는 일이 더는 신기하지 않게 된 것처럼. 그렇지만 이 순간을 남겨두고 싶어서 기록한다. 30분 동안 내가 느꼈던 어쩔 줄 모름과 허전함, 이후에 찾아온 자유와 그리움이 혼재된 이상한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