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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Apr 11. 2022

독서의 효력이라는 화두, <공부머리 독서법>

책 리뷰


  내 독서의 시작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였다. 장르의 궤적을 넓히며 읽다 보니 내용이 유익해서, 문장이 아름다워서, 앎의 기쁨에 매료되어서 책 읽기의 이유라고 말할 것들이 생겨났다.

  도서관의 냄새와 정적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책장의 가장자리를 살며시 잡은 채 두 눈으로는 활자의 방향을 자분자분 따라가는 일련의 연속된 과정. 종잇장의 온기 있는 감촉과 책장이 사락사락 넘어가는 소리는 나에게 절대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책을 펼치면 그 즉시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그곳은 나만의 shelter이다. 아늑하고 안전하며, 고독하면서도 신비로운 달콤한 나만의 세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정말 맞아! 나도 그래!” 하는 반가운 공감대가 만들어지곤 한다. 하지만 이런 나를 불가해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수신하는 순간이 더 잦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교실이다. 책 읽기의 중요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학생들이 나를 보는 표정은 대체로 건조하고 지루하며 감흥이 없다. ‘아, 또 쌤의 책 얘기가 시작되었다...’라고 속엣말을 하는 듯 따분한 얼굴이다.

  반면 중간고사 범위와 출제 유형에 대해 말하면 다수의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시험과 그것의 결과인 성적은 우리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인데, 그게 좋아서라기보다는 대학 입시에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서에는 흥미가 없지만 성적에는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독서의 쓸모를 성적 향상과 관련지어 알려줄 수 있겠' 싶었다. 내가 아끼는 이들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잘 전하고픈 마음을 안고 이 책을 성실하게 읽어 내려갔다.


  책은 학생들의 문해력과 학업 성취도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바탕으로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말한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무척 실용적인 내용이다. 독서로 기를 수 있는 언어능력이 학업능력의 근간이 된다는 팩트를 무한 강조하며 독서의 효력을 설파한다. 저자는 논술교육, 독서교육의 현장에서 직접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만나기에 누구보다 생생한 경험치를 소유하고 있고, 그것들을 공유하면서 설득력 있게 독서의 동기를 제공한다.


“언어능력이 학습능력이다.”
“학생에게 언어능력은 운동선수의 근력과 같다.”
“언어능력이 높다는 것은 컴퓨터의 사양이 높은 것과 같다. 정보처리 속도가 빠르고 정확하다는 뜻이다. 독서야말로 두뇌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이다.”


  저자의 강조점 중에서 내가 특히 공감한 논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속독의 본질과 그 위험성이다.

  평소 다방면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언어능력이 좋아서 교과서 수준의 글은 쉽게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가 바로 속독이다. 쉽게 말해, 분명 독서광이긴 한데 공부머리가 없는 경우, 그는 심각한 속독가 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책 읽기의 대원칙 중 첫 번째는 생각을 많이 할수록 좋은 독서라는 사실인데 속독을 하는 와중에는 생각을 위한 틈이 없다. 이런 경우는 책을 많이 읽어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속독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랄까, 원인은 무엇일까? 대게 다독가라는 칭찬을 들어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보여주기 식 독서를 하게 되는 경우이거나, 읽은 책을 모으는 수집가적 성향의 독서습관이라고 한다. 책 읽기라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며 그 의미를 찾기보다는 소위 책 허세를 부리는 독서가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어떤 환경에서는 책을 읽는 그 행위 자체보다 책 읽기 이후의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될 수 있는데, 뭐든지 목적이 너무 뚜렷해버리면 과정의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조기교육의 위험에 관한 구체적 진술이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두뇌가 완전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인지학습적으로 자극하기보다는 정서·사회적 안정감을 충분한 환경에서 자신을 둘러싼 사람과 사물,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적절히 일으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책을 읽어줌으로써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시기인 것이다. 과도한 인지 발달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어서 학업성취도에 압박을 느끼고, 공부를 ‘싫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앎의 기쁨을 순수하게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몹시 안타깝다.


  일단 조기 교육이 아이의 뇌를 파괴한다는 연구 결과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한국 뇌연구원 초대 원장인 서유헌 교수는 조기 교육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영유아의 두뇌는 신경 회로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매우 엉성한 상태예요. 엉성한 전기 회로에 과도한 전류를 흐르게 하면 과부하가 걸리듯, 과도한 조기 교육은 과잉학습장애 증후군, 우울증, 애착 장애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조기 교육은 조립을 채 끝내지도 않은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서유헌 교수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세계 뇌 과학계에서 정설로 인정하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을 끝낸 주류 이론입니다. 뇌 과학은 '영유아기는 공부를 하는 시기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지식도서를 10 회독만 하면 누구든 명문대를 진학할 수 있다'라고 저자는 다소 호기롭게 말한다. <코스모스>가 단순하지 않은 문장으로 쓰인 좋은 읽기 교재이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지식이 융합된 훌륭한 지식 도서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읽는 연습을 충분히 해온 학습자라면 당연히 학교 교과서를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일에 어려움이 덜할 것이다. 읽기를 통한 언어능력 신장은 학습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한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 학생들이 너무 어린 나이부터 학업성취를 의식하기보다는 책 읽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먼저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책을 좋아했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 읽기를 시작했든, 그 속에서 자신과의 접점과 조우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책 읽기에 있어서 궁극의 목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믿는다.




  책 한 페이지를 몇 초 만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은 놀랍긴 하지만 독서의 효과 측면에서 보면 질이 낮은 독서입니다. 책은 생각의 도구입니다. 책 속에는 작가의 정교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독자는 책 속에 담긴 그 생각을 따라가며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대입해봅니다. 그 과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독자는 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한 페이지를 몇 초 만에 읽어버리면 이런 지적, 정서적 반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사유하고 깨달을 수 없고, 이야기 속 인물의 감정에 공감할 수도 없습니다. 정보는 광속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공감과 사유, 통찰은 광속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속독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천재성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도구인데,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가진 천재는 책을 통해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타고난 능력 탓에 나쁜 독서 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속독 능력은 천부적 재능의 치명적인 약점 내지는 부작용인 셈입니다. 속독을 습득하는 것은 남의 부작용을 애써 얻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속독은 영혼 없이 정보만 간단히 습득해도 좋을 때나 쓸 수 있는 하찮은 잔기술에 불과합니다. 속독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일부 독서교육 전문가들 중에는 속독해도 좋은 책과 속독하면 안 되는 책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속독해도 좋은 책이라면 읽지 않는 편이 시간 낭비를 막는 방법입니다. 가전제품 사용설명서보다 가치가 없는, 텅 빈 책일 테니까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독서는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읽는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그래야만 공부머리를 기를 수 있고, 책의 진짜 재미도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최소한 소리 내서 읽는 속도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해주세요. 속독이 나쁘다는 것,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는 것만 알아도 아이가 속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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