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Apr 18. 2022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처음 그것을 인식했을 무렵, 무척 혼란스럽더라고요. 분명 기쁜데, 왜 슬픈 것 같지? 나라는 인간이 모순덩어리처럼 느껴졌어요. 까뮈의 책에서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라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바란다니?! 부조리, 실존, 모순.. 저에게는 어려웠어요(지금도 여전히 어렵고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지, 애초에 맞고 틀린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생각할수록 카오스 그 자체입니다. 술냄새와 꿈냄새가 동시에 진동하는 듯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이러한 인간의 모순적 측면에 관해 답을 얻은 듯 숙연해졌습니다.  

   

"지혜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가 말이야. 다른 생명체는 죽어도 자기 죽음이 갖는 의미를 몰라. 신은 안 죽지. 그런데 인간은 죽는 것의 의미를 아는 동물이야. 신과 동물이 함께 있으니, 비극이지. 지혜가 있으면 죽지 말아야지. 지혜가 없으면 죽음을 모르니 그냥 살아. 그냥 살면 무슨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겠어? 포유류 중에 눈물 흘리는 건 코끼리와 사람밖에는 없다고 하지. 아무리 영특해도 주인 죽었다고 우는 개는 없어. 슬퍼할 줄은 알아도 눈물은 못 흘려. 눈물은 인간의 것이거든.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세상에 잠복한 수많은 아이러니들이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건 뭘까요. 죽음과 가깝게 지내야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죽음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걸까요.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자꾸 밀어내려 할까요?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자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암에 걸려 곧 다가올 죽음을 겸허히 기다리는 스승님이 마치 내 눈앞에 있는 듯, 책의 저자 김지수 님에게 빙의하여 경청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어머니 곁으로..…"
"그래,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과정이 그래, 아기 때는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떨어지면 죽는 줄 알지. 그리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하고 정신 빼놓고 놀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지. 그러다 부르면 화들짝 놀라서 원위치로 가는 거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거라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눈부시게 환한 대낮이지요."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대체로 죽음을 망각할 때 삶을 사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한낮의 따뜻한 볕 아래에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며,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서 죽음을 떠올리고 싶어요. 그걸 통해 소중한 것들을 더 잘 발견하는 눈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고갈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더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목적 같은 건 없어. 생명, 살아 있는 것, 그게 이 세상이라네. 눈물 나는 세상이라네.’


  저마다 각자의 짐을 감당하며 생의 의미를 찾습니다. 삶의 의미는 죽음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죽음은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품어야 할 대상이 아닐까요.

   

"한 존재에 깊이 의지하면 '이 사람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나거든, 어렸을 때 엄마와 애착이 심해지면 치맛자락 붙잡고 그러잖아. 엄마, 나 두고 죽으면 안 돼.'
그때 어머니가 뭐라고 그래? '엄마 안 죽어. 너 두고 절대 안 죽어. 그러면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되지. 아무리 어린애라도 죽는다는 걸 왜 몰라. 그런데 엄마가 '너 두고 절대 안 죽는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란 없는 거야. 우리가 죽음을 이기는 거라네."    


  심상한 날들이 이어질 때, 권태와 욕망이 동시에 나를 흔들 때, 내 삶을 지키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될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이 책이 왜 좋은지, 말하고 싶은 구절들이 차고 넘칩니다. 귀한 책을 소개해주셔서 이번에도 또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의 효력이라는 화두, <공부머리 독서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