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지혜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가 말이야. 다른 생명체는 죽어도 자기 죽음이 갖는 의미를 몰라. 신은 안 죽지. 그런데 인간은 죽는 것의 의미를 아는 동물이야. 신과 동물이 함께 있으니, 비극이지. 지혜가 있으면 죽지 말아야지. 지혜가 없으면 죽음을 모르니 그냥 살아. 그냥 살면 무슨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겠어? 포유류 중에 눈물 흘리는 건 코끼리와 사람밖에는 없다고 하지. 아무리 영특해도 주인 죽었다고 우는 개는 없어. 슬퍼할 줄은 알아도 눈물은 못 흘려. 눈물은 인간의 것이거든.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어머니 곁으로..…"
"그래,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과정이 그래, 아기 때는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떨어지면 죽는 줄 알지. 그리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하고 정신 빼놓고 놀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지. 그러다 부르면 화들짝 놀라서 원위치로 가는 거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거라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눈부시게 환한 대낮이지요."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목적 같은 건 없어. 생명, 살아 있는 것, 그게 이 세상이라네. 눈물 나는 세상이라네.’
"한 존재에 깊이 의지하면 '이 사람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나거든, 어렸을 때 엄마와 애착이 심해지면 치맛자락 붙잡고 그러잖아. 엄마, 나 두고 죽으면 안 돼.'
그때 어머니가 뭐라고 그래? '엄마 안 죽어. 너 두고 절대 안 죽어. 그러면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되지. 아무리 어린애라도 죽는다는 걸 왜 몰라. 그런데 엄마가 '너 두고 절대 안 죽는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란 없는 거야. 우리가 죽음을 이기는 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