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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Apr 03. 2022

바깥은 봄인데

책 리뷰

  지난주에 있었던 대입 진학설명회 야근 이후로 쌓인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뒷목부터 어깨와 등이 뻣뻣하고, 성대는 찢어지는 듯 따끔거린다. 커피를 계속 마셔도 머리는 맑지 않고, 몸은 축축 처진다.


  교실에서 50분간 말을 하고 교무실 내려와서 책상에 그대로 엎드린 채 잠시 눈을 붙인 뒤, 종이 치자 곧장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실로 들어서자 창문 너머로 벚꽃이 한창이다.


- 바깥은 봄인데...


내가 말하자, 아이들이 나를 본다. 그 뒤를 무슨 말로 이어 붙일지 생각치 않은 채 무심코 입을 뗀 말이었다. 바깥에 핀 벚꽃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내 심신은 극도로 지쳐 있었다.


- 히터 끌까요, 쌤?


나름 눈치빠른 반장 아이가 나선다.


- 아니 괜찮아. 아직은 바깥 기온이 좀 차다 그치.


- 바깥은 봄이니까.. 밖에 나가서 야외 수업하나요?


누군가의 장난 섞인 말에 아이들이 "오~" 하며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본다.


- 그것도 좋긴 한데.. 다른 거 없나..?


- 바깥은 봄인데 제 마음은 11월입니다..


내 마음을 읽었군. 남자고등학교이지만 이런 감성이 한 반에 한두 명씩은 꼭 있다.


- 어째서 11월인 거야, 너의 마음은.

- 중간고사 기간이잖아요. 춥고 공허합니다.

- 음.. 중간고사 기간은 누가 규정하는 거지?○○야, 너의 중간고사 기간은 언제부터지?


교실에서 누구보다 낙천적인 ○○에게 의도가 있는 질문을 던진다.

- 음.. 시험 당일이요?ㅎㅎ

어이없깨달음이 있는 웃음이 반 전체에 터진다.


  어차피 올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고 힘들어하기보다는 지금은 벚꽃을 좀 즐기자. 아름답고 좋은 것들은 금세 지나가 리니까.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다. 똑같아 보이는 매일매일도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하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스라벨(스터디 앤 라이프 밸런스) 지켜가며 순간순간 행복을 찾자..


  계획에 없던 말을 생각나는대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요는 지치고 힘들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는 쉬게 해 주자는 .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해주고 싶던 말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나에게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수업할 때보다 훨씬 공감가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어딘가가 무언가로 채워지는 듯했다.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 언제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요즘처럼 내 마음이 납작해진 것 같을 때, 더욱 효과가 있다.


이 글을 읽는, 자의 이유로 벅차고 힘겹고 고달픈 시간을 통과중인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기쁘고 행복한 그 순간에는 최대한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되, 그것이 지나갈 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지금을 살면 됩니다. 힘든 순간에는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분노를 잠시 내일로 미뤄두는 겁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는 것이죠.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죽은 자가 간절히 바란 내일이었을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매이지 마세요. 우리조차도 유구한 시간에서 잠시 머물다 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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