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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r 11. 2022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책 리뷰

 

  나에게 시는 대체로 불가해하고 난처하다. 어떤 느낌이 전해져오긴 하지만 모호하고 손에 잡히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난감하다.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으면 진정 아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사실 내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어쨌든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무척 어렵기에 시와 그다지 친하지 않다. 대신 시인이 쓴 산문을 읽는 것은 좋아한다. 시인의 글은 대게 보통의 산문보다 특별한 언어로 쓰여져서, 무방비 상태로 읽다가 세게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박연준 시인과 박준 시인의 글이 그랬다. 더없이 함축적이거나 절묘하게 비틀린 표현들, 과녁의 정중앙을 꽂아버리는 말, 종종 과장되거나 격앙된 단어들은 내 마음 깊은 곳을 툭툭 건드리거나 사정없이 흔들어버리곤 했다.     


  백은선 시인의 시는 읽어본 이 없다.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가 쓴, 끌리는 제목의 이 산문집을 단숨에 읽었다. 저자는 시를 쓰고 글 짓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다. 작가가 자발적으로 서술한, 자신의 어린 시절 당했던 각종 폭력들이 삶에 여러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 것이 슬펐다. 세상에는 여성이기에 겪을 수 있는 고통과 비난과 슬픔이 다양하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게 다채롭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피로할뿐더러, 누군가는 그러한 담론에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시하기에 같은 여성들도 입을 다물기도 한다. 그 지난한 일들을 통과해 성인이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른’이 된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어른이라서 뭘 어째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우리들도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기대에 도달하려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자아를 학대하거나 고갈시키고 있지는 않았던가. 삶에서 내가 온전히 나였던 적이 있었던가.     


  작가의 글은 다소 두서없고 거칠고 파편적이다. 날것인 듯 활활 하면서 독백처럼 고요하다. 극도로 불안해 보이다가도 강철같이 단단해 보인다. 독자의 반응에 최대한 연연하지 않으려 쓴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내 꿈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시인을 통해 내 안의 무언가가 위로받았다. 나는 이제 용기를 내서 그의 시집을 읽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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