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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시기엔 질풍독서를

by La Francia

현재 휴직 중인 나는 한 달에 대여섯 번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월 1회 하던 모임의 빈도가 늘어났고 낭독, 영어독서 등 장르가 확장되기도 했다. 이렇게 내 일상에 독서모임이 자리 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읽는 것, 그것도 누군가와 함께 읽는 즐거움이 크니까. 재미로만 따지자면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 보는 것만 한 게 없겠지만, 일상이 넷플릭스라면 그건 어쩐지 좀 헛헛하다. 활자를 읽으며(특히 문학을 읽으며) 행간을 읽고, 잠시 그곳에 머물러 보는 시간들, 읽은 것에 대하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매개로 대화의 주제와 내용이 확장되어 가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재미뿐만 아니라 충만함을 느낀다. 내 안에 뭔가 차오르는 기분,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 나는 그런 걸 좋아한다.



<질풍독서로 성장하다>를 읽으며 저자 박영희 선생님의 책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책'이라고 소개글에 적어놓으셨을 정도라니. 학창 시절에 도서부와 독서동아리에서 글을 읽고 쓰는 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이 지금의 선생님을 존재하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십 대였을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정서적으로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어릴 적 나는 혼자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며 읽었을 뿐 책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방법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이 책에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책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례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박영희 선생님의 학생들이 되어보았다.



'올해 목표가 뭔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나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 본다.' p.111



'시를 사랑하고 문학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 쌓이다 보면 국어 성적도, 더 나아가 삶의 감수성도 분명히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결국 나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점수가 아닌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시험점수만으로는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들의 관심과 흥미를 살려주는 일이다.' p.131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복직하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준비한 내용이 이 아이에게 가닿았구나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눈앞에 놓인 것들 - 고득점, 성취도 향상, 스펙 쌓기 등 - 너머의 본질적인 가치들을 인식하기. 그 순간 삶의 감수성이 깊어진다. 그 과정의 훌륭한 매개체가 바로 책이다. 현생을 살아내느라 바쁜 아이들(물론 어른들도)에게 책은 잠시 숨 돌릴 구석을 마련해 준다. 오직 시험점수로만 평가받는 학생들에게 세상엔 그것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그때 아이들의 눈빛이 불안에서 안도로 바뀌는 걸 본 적 있다.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살려주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사의 역할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모든 좋은 것들은 책 속에 있는데,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다. 세상에 오락거리가 책밖에 없다면 아주 쉬웠을 텐데, 현실엔 우리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다. 저자는 책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야기 들려주기, 함께 읽기, 직접 책 고르기 등의 방법으로 접근한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아직 자신만의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구절에 너무 공감이 되어 줄을 쳤다. 책을 제대로 접해볼 기회가 없이 성인이 되는 경우도 많고, 평생 책 읽지 않는 어른도 많다. 사람이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책이 주는 정서적인 힘은 읽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누구나 십 대 시절을 떠올리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70세가 넘은 내 어머니도 본인의 여고시절을 회상하며 수다스러워진다. 그때 참 좋았지, 그 시절 나는 우울했지, 이렇게 기억나는 느낌들의 총체가 바로 정서이다. 전두엽이 활발히 발달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충동성이 강해지는데, 독서는 이런 충동성을 낮춰주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솟구치는 감정을 차분하게 다스리면 불안이 감소하고 기분이 나아진다. 상상력과 공감력이 풍부해지고 창의력과 생각하는 힘도 생긴다.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좋은 정서를 형성하고 문해력과 사고력도 얻는다니, 청소년기의 독서를 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춘기 시절에 '질풍독서'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얻게 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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