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연수 2일 차

by La Francia

복직교사연수 이틀차이다. 급식 신청을 못해서(놓쳐서) 도시락을 싸간다. 어제 아침엔 김밥을 쌌고, 오늘은 닭가슴살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초등학생 딸들을 위한 음식은 따로 있다. 전날 미리 주문받아놓은 그 메뉴는 아침: 달걀국, 점심: 달걀말이다.(이러니 계란 한 판이 사나흘이면 동난다.)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달걀국에 밥을 말아먹는 동안 나는 다시 달걀을 깨트려 휘젓는다. 당근 파 버섯을 다져 넣고 한 번 더 젓다보면 오른팔 전완근이 뻐근하다. 네모난 팬에 계란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돌돌 말아 대왕계란말이를 완성한 뒤 잠시 식힌다. 그 사이 일어난 남편이 개수대에 제멋대로 쌓인 그릇과 조리도구들을 설거지하고, 사과를 깎는다. 덕분에 아침 설거지가 쌓이지 않는다. 계란말이를 0.5cm 두께로 썰고 두 개의 밀폐용기에 반반 나눠 담아 식탁에 올려놓은 뒤, 외투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8시 20분. 아주 오랜만에 시내 도로의 출근시간 교통체증을 겪으며 한적한 바닷가길로 구불구불 빠져나갔다. 새로 지어진 연수원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어제는 미래사회와 AI에 관한 수업과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법지식에 관한 연수를 들었다. 강사는 각각 방송국피디와 변호사였다. 두 분의 행색과 말투와 그들이 가져온 콘텐츠(폰트까지)는 크게 달랐지만, 두 강의 모두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용적으로는 무척 유익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수업은 내게 시작도 끝도 모르겠는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세상이 이토록 빨리 변하고 있고 어서 따라가야 한다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쫓기는 느낌. 학교에서 악성 민원이 들어오면 잘 대처할 수 있을지, 학생이나 보호자에게 고소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오늘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강사는 어느 고등학교의 수석교사이자 수업코칭 전문가였다. 티브이를 비롯항 각종 매체에 출연했던 경력이 무색하지 않게 마치 레크리에이션 진행자 같은 톤으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이끌어나갔다. 우리는 네 명씩 분임(모둠)을 만들어서 새로운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보고 소통하며 '수업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교육현장은 언제나 '변화'를 말해왔지만 정작 학교는 변화에 소극적인 곳이라는 현실적인 지적이 와닿았다. 수업은 공학이 아니기에 에듀테크를 아무리 배우고 활용하여도 자신만의 철학이 부재하다면 만족스러운 수업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 즉 교사 자신의 수업의 본질을 스스로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어떤 수업을 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이 가장 우선해야 한다.



오후강의는 근처의 대형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강의나 수업의 형태가 아닌 말 그대로 힐링의 시간이었다. 오션뷰를 갖춘 장소를 섭외하고, 40명 넘는 인원에게 전날 미리 카페메뉴를 주문받아 준비한 교육연구사님의 노력이 고마웠다. 내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누군가가 날 위해 좋은 마음으로 애써주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 안다. 카페 4층으로 올라가니 루프탑 테라스가 있었다. 바람 없이 잔잔한 오늘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찰랑거리는 바다 위로 윤슬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풍경을 보면서 일기 어플을 열어 글을 썼다. 복직을 앞둔 자신에게 보내는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30분이 지나고 다시 분임선생님들과 모여 앉아 각자 쓴 내용을 나누었다. 다들 짧게 몇 줄 쓰셨는데 나만 너무 길게 써와서 조금 민망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읽었는데 다정한 선생님들은 박수를 쳐주셨다. 심지어 우리끼리 듣기 아깝다며 강사선생님께 손을 드는 바람에, 나는 전체 선생님들 앞에서 내 일기를 한번 더 읽게 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손과 목소리가 동시에 떨렸다. 그래 맞아, 나는 대중 앞에 서면 쉽게 긴장하는 편이었지. 아주 오랜만에,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아름다운 겨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왔다. 복직연수라는 단어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시간을 만들어 주신 연구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연수 담당 교사 김 00 선생님께도. 같은 분임이 되어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휴직 서사를 공유한 세 분의 선생님들께도. 내가 없는 집에서 각자 공부를 마치고 함께 놀고 있을 내 두 딸에게도. 오늘 아침에 대왕계란말이를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왔다. 자매는 주방에서 발받침대를 딛고 올라가 작은 손으로 밥솥의 밥을 떠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그 장면을 그려보니 기특해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학교에 돌아가면 나는 다시 바빠질 것이다. 퇴근 후에는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키는 횟수가 늘어날 테고, 자매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하고 잠드는 밤이 잦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터로 돌아간다. 내 이름이 적힌 통장으로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한 교실에 들어앉아있을 스물댓 명의 아이들의 담임이 될 것이다. 그중 몇 명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것이다. 어떤 동료 덕분에 감사할 일과 또 다른 누군가로 인해 짜증 날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나는 학교 일을 유능하게 해내는 사람이 아니었고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므로 이번에 복직해서도 아마 다양하게 실수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실수한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내가 되고 싶다.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 격려해주고 싶다.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나를 안아줄 용기가 나에게 생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닿는 수업을 하고 싶다. 영원하지 않을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그 이야기 끝에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라도 더 발견한다면 나는 많이 기쁠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고개를 들자 연구사님과 몇몇 선생님들이 울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포인트가 있었던 것 같진 않지만 그저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는 느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랑스러운 보리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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