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Nov 20. 2022

미래의 내가 그리워할 순간

눈 안에 결석이 유독 많이 생기는(각막 결석이라는) 특이한 증세가 있다. 날카로운 것이 안쪽에서 안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때면 또 돌이 생겼나 보군, 하고는 담담히 안과에 가서 제거한다. 몇 년째 증상이 없어서 잊고 사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제저녁 요가 중 머리 서기를 하는 순간, 왼쪽 눈에 예의 그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아래 위로 눈을 까뒤집어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악 소리 나게 아프면서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왼쪽 눈이 충혈된 채로 퉁퉁 부어있었다. 안과 좀 갔다 올게, 하고 집을 나서는데, 일곱 살 딸아이가 '나도 같이 가!' 하면서 뛰어나온다. 차 조수석에 앉은 아이는 연신 '엄마 괜찮아요? 운전할 수 있어? 눈 많이 아파?' 걱정한다. '응 지금은 많이 안 아파, 괜찮아, 병원 가면 선생님이 바로 낫게 해 주실 거야.' 계속 말해줘도, 작은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고 수심이 깊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우리는 잠시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들어가라는 안내가 들렸다.

 

-엄마 갔다 올게, 여기서 잠깐 혼자 기다릴 수 있겠어?

-응 엄마, 내가 손 안 잡아줘도 되겠어?

-응 괜찮아, 엄마 가방 여기 두고 갈게, 갖고 있어.


5분 조금 지났을까, 진료가 끝나고 대기실로 왔다. 아이는 내 가방을 보물처럼 꼭 끌어안은 채로 ytn 뉴스가 나오는 티브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평소 불안감이 높은 아이라서 낯선 곳에서는 늘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오늘 용케도 떨어져 있었다. 솔아, 부르자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엄마, 괜찮아? 눈에 피났어요?!????

-아, 어, 피가 좀 묻어있나?

-응 엄마, 무서워..

 

정말 무서운 걸 본 듯 살짝 울먹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걱정은 되는데, 피눈물 자국은 무서운가 보다. 아까는 손잡아준다더니, 방금은 약간 뒷걸음질을 쳤다.



1층 약국으로 가서 아이는 직원에게 호기롭게 처방전을 내민다. 언젠가부터 병원에서 본인이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도 직접 제출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병원 용무에 딸이 동행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간 아이와 함께 병원과 약국을 무수히 방문했던 건 모두 아이의 병증 혹은 검진 때문이었다. 속으로 '많이 컸네' 하며 뭔가 많이 기특하고 갸륵했다. 몇십 년쯤 흐른 뒤에 이 아이가 나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같이 가주려나 하는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감개가 무량해졌다.



약국에서 나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다이소에 잠깐 들렀다. 아이는 시즌 상품인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을 요목조목 구경하다가 제 주먹만 한 스노볼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스노볼을 한번 뒤집으면 반짝반짝 하얀 눈이 내리다가 그 속에 있는 작은 트리 위로 소복이 쌓인다. 한참 동안 그걸 들여다보는 아이의 눈이 마구 반짝거린다.


-우와.. 엄마, 나 이 속에 들어가고 싶어요.


오천 원짜리 그 스노볼을 사주었다. 동생것도 같이 사고 싶다고 해서 두 개를 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스노볼만 쳐다보았다. 엄마의 피눈물은 잊은 지 오래다.




집에 돌아와서 작년에 넣어둔 트리를 꺼냈다. 아이는 1시간 동안 정성껏 트리를 장식했다. 딸이 두 살 때인가 세 살 때인가 샀던 작은 트리. 이 소녀는 어느새 이 나무만큼 키가 자랐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일도 오롯이 혼자서 해낼 만큼 컸다.



잠들기 전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오늘 가장 재밌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스노볼을 산 것과, 트리를 만든 일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잘 자, 내일 또 재밌게 놀자.

-응. 엄마도 잘 자요.

-좋은 꿈 꿔, 사랑해.

-음 근데 엄마, 왜 잠을 자면 꿈이 나와요?

-음.. 사람은 왜 잠잘 때 꿈을 꾸냐는 말인 거지?

-네

-글쎄.. 왜 우리는 꿈을 꾸는 걸까.. 잘 모르겠는데.

-아, 엄마, 나는 알 것 같아. 달님이 우리가 잘 때 머리에 꿈을 넣어주는 거 아닐까? 우리가 소원 비니까 우리가 뭐를 하고 싶어 하는지 다 알잖아. 그래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거를 꿈으로 넣어주는 거 아닐까요?

-오, 달님이?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이는 늘 그렇듯 5분도 안돼어 잠들었다. 나도 까무룩 잠들었다가 이 이야기를 잊지 않고 써놓고 싶어서 다시 일어났다. 입을 살짝 벌리고 얕게 코를 골며 무방비하고 천진한 자세로 자는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딘가 경이롭다. 팔이며 다리며 머리칼이며 정말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고 있는 중이다. 오늘 자고 일어나면 내일 더 자라 있겠지. 아이가 크는 좋으면서 아쉽다. 때로는 그저 사무치게 아깝다. 단언컨대, 미래의 나는 이 시절을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겪음과 동시에 아쉬운 이 순간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기록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밤, 그 아늑한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