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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an 30. 2023

남편이란 무엇인가

함께 산지 9년 차

70억 명의 사람이 있으면 70억 개의 마음이 있다고 했다. 인간은 모두 고유하므로.

하지만 경험상 기혼 유자녀의 여성(필자 포함)들이 주로 하는 남편에 관한 얘기는 딱히 고유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해당하리라. 남편들이 모여서 하는 아내에 관한 이야기라고 오죽 다채로울까.)



어째서일까.

인간이 남편이 되는 순간 특정한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이 탑재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남편 탓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연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와 오래 함께 살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위 문장에서의 '그렇게' 가 논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아마 이 글을 읽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언짢음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왜, 뭐, 어떻다는 건데? 하며 이미 분노하고 있을지도.



그 흔한 만행들, 이를테면 육아(자녀교육)나 집안일에 무관심하다든지, 외부활동이나 자신의 취미생활에만 치중한다든지, 아직도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운다든지, 고부갈등을 외면한다든지, 다소간의 의처증이 있다든지 등의 행위는 제쳐두고, 오늘은 그저 남편이라는 정체성에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건, 최근 나의 남편이 혼자 약 열흘 일정의 해외여행을 떠나고 나서이다. 업무가 과중했던 그가 한 달간의 공백이 생겨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평소에 관심 있던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남편은 가족 여행을 제안했지만, 해당 지역 특성상 어린이를 동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아이들과 남겠으니 이번엔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그가 이처럼 긴 휴가를 누리는 일은 흔치 않았고, 나는 그동안 열심히 일한 남편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고백하건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처럼 관대한 아내가 아니었다. 늘 육아에 지쳐있었고, 남편이 야근이나 회식한다고 전화하면 어김없이 화내며 원망했다. 그가 내 눈치를 보며 미안해하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 케어하느라 운동도 못 가고 조용히 책도 못 읽는 내 처지를 서럽게 비관하며 당장 귀가하라고 윽박질렀었다.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자라서 최근에 특히 부쩍 말이 통한다. 연년생 자매라 둘이 친구처럼 어찌나 잘 노는지, 이제는 애들을 집에 두고 1시간 정도는 요가 수업이나 헬스장에 다녀올 수도 있게 되었다. 내 욕구가 충족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재충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편의 부재는 모든 집안일을 내가 떠안는다는 의미이기에, 육체적으로 힘들 거라는 각오는 했었다. 나 혼자서 아이 둘을 건사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떠난 빈자리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적 자유로움!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결코 서로 전혀 억압하지 않으며, 지나친 관심을 갖거나 자주 연락하는 편도 아니다. 사이가 좋으냐 안 좋으냐 중에 고르라면 딱히 고민 없이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저 평범한 부부이다. 내 남편이 퍽 자상하고, 집안일에 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임한다는 걸 내 지인들은 알고 있다. 그런 남편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압도적인 자유로움과 홀가분함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있으나 없으나 내 일상에는 한치의 변화도 없는데 말이다.

(내 일상 -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 먹이고,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낸 뒤, 헬스장으로 가서 유산소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수영장에 감. 귀가하여 혼자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됨)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감정의 연결고리가 떠오른다. 방학이 시작되고 이제 혼자 조용히 쉴 수 있겠거니 기대고 있었을 때, 남편이 기뻐하며 말했었다. 자신도 이번 한 달을 쉬게 되었다고. 그 순간 나는 약간 '실망'을 했던 것이다. 내가 꿈꾸던 '혼자 조용히'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특별히 귀찮게 하는 존재가 아니고 밥을 차려줘야 하는 대상도 아니지만, 나는 왠지 그가 짐스러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옆에 있으면 계속 관심을 가져줘야 할 것 같고, 어디 함께 외출이라도 줘야 할 것 같고,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어봐주어야 할 것 같다. 그는 식단을 하는 나에게 자꾸 '라면 먹을래?' 묻고(나는 라면을 좋아하지만 참는 사람이며, 그는 내가 안 먹는다고 해도 기어이 혼자 끓여 먹는 편),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냄새를 풍기며, 결정적으로, 내가 책 읽을 때 자주 말을 건다. 글로 써놓고 보니 그는 꽤 신경 쓰이고 성가시고 유혹적인 인간이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나는 이러한 심정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기혼 유자녀 여성들로 이루어진 구성원 모두는 내 이야기에 박수를 치며 격하게 공감했다. 특히 부부 교사인 선생님들이 만장일치로 토로했다. "주위 사람들이 부부교사는 같이 쉬어서 좋겠다고들 하는데 난 사실 진짜 혼자 있고 싶거든. 부부끼리도 거리를 좀 둬야 해." 존재자체가 짐스럽다는 말은 어쩐지 서글프지만, 그 말만큼 남편의 존재를 잘 설명해 주는 말도 없다며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박장대소했다. 음,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의 존재도 이와 근접한 층위문득 궁금하다. 




이 글의 제목은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영민 교수님의 보석 같은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오마주 하였음을 밝힙니다.


 [사유와 성찰]“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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