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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Feb 23. 2023

<월든 Walden>

 간소하게 살라는 소로우의 일침

불멸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월든>을 드디어 완독 했습니다. 200여 년 전 쓰여진 이 책은 마하트마 간디, 데일 카네기뿐만 아니라 법정스님의 극찬을 받아서 우리에게 더욱 알려졌지요. 개인적으로 저 학부 때 영문학을 공부하며 저자에 대해 처음 들었습니다. 이후 마음 챙김. 요가. 명상 등에 관한 여러 에서 <월든>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걸 보고 필독서 리스트에 올려두었지요.  차례 일독을 시도하였지만 끝까지 읽어낸 적이 없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이와 유사한 전적을 가진 작품이 여럿 있어요. 그 대표주자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입니다.)


네, 독해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저는 이런 가독성 떨어지는 어려운 책을 완독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월든>은 제게 결코 잘 읽히는 책이 아니었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이달의 도서로 선정하였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뤄왔던 숙제를 하나 끝낸 듯 성취감과 뿌듯함을 가지고 독서 기록을 시작합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17년 매사추세츠 출신의 작가입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고, 아버지가 연필 공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환경이었음에도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일이나 목수일 등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1845년 그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자급자족하며 2년을 보냅니다. 친근하게 말하자면 티브이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업계의 원조 선배님이랄까요. <월든>은 소로우가 호숫가에서 살며 생각하고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총망라한 기록입니다.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간소하게, 간소하게'를 지향하는 소로우의 철학이 요즘의 미니멀리즘 트렌드와 맞닿아 있어서 <월든>이 다시 언급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로우는 채식을 하고(1일 1식), 소비와 지출을 극도로 줄이고, 돈을 벌기 위한 과도한 노동을 거부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합니다. 그는 부와 명예를 좇는 문명사회를 한탄하며, 현대인들이 욕망을 내려놓고 소박하게 살 것을 권장합니다. 당시로서는 무척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들어온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소비하를 설파했으니까요. 당시 미국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한다는 취지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경찰서에 구금된 일화 또한 그의 진보적인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참고로 사회과에서는 소로우의 진보적 정치 철학을 담은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저서가 더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는 <월든>에서 자신이 직접 판자와 못을 구해 오두막을 지은 구체적인 과정부터 호수의 풍경, 그곳에 사는 온갖 동식물에 관한 묘사, 세속의 '성공'이라는 개념에 관한 통렬한 풍자에 이르기까지 일필휘지로 썼습니다. 때로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듯 앞뒤 맥락이 모호하고(tmi가 지나치고), 식물도감을 읽는 듯 난생처음 들어보는 나무 이름들이 난무합니다.


여름날 아침이면 나는 자주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가서는 그 안에 길게 누워 몽상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는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배가 떠가도록 맡겨놓으면 몇 시간이고 후에 배가 기슭에 닿는 바람에 몽상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일어서서 운명의 여신들이 나를 어떤 물가로 밀어 보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시절은 게으름 부리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이던 때였다.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들을 그런 식으로 보내기 위하여 오전 나절에 몰래 빠져나오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 시간들을 조금 더 공장이나 학교의 교단에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p.288, ch.9 호수 중에서



200년 전에 쓰여진 글인데도 불구하고 요즘의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월든>은 '불멸의 고전'이 맞습니다. 당시에도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좇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 놀라웠어요.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할진대, 우리의 미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일찌감치 이 사실을 간파하고 당시의 세태를 한탄했던 소로우. 훌륭한 시각을 가진 글은 시대를 관통한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당대의 문학가가 쓴 글답게 아름답고도 통찰 있는 문장들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와닿는 문장을 발견하 밑줄을 긋고 문장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삶을 흐르는 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의도한 대로 살고 있는가.
남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자신의 봄을 일부러 여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왜 우리는 배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는가.






하지만 글의 초반에 언급했듯, 저에게 있어서 문학작품 <월든>은 전반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떤 단락은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소로우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을 이해하기에 저의 배경지식이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관한 해설서가 왜 그렇게 많이 출판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지요. 세월이 흐른 후 지식과 교양이 더 쌓인다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연?


아침마다 나는 <바가바드기타>의 경이로운 우주 생성 철학에 나의 지성을 목욕시킨다. 이 책이 쓰인 후 신들의 시대는 갔으며, 이것에 비하면 우리의 현대 세계와 그 문학은 왜소하고 보잘것없다. 그 철학의 숭고함이 우리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우리의 전생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우물로 물을 길러 간다. 아니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만난사람 이 있었으니, 다른 사람 아닌 바라문의 하인이다. 브라흐마와 비슈누와 인드라 신의 승려인 바라문은 아직도 갠지스 강변에 있는 자신의 사원에 앉아 베다 경전을 읽고 있거나 빵 껍질과 물병만을 가지고 나무 밑에 살고 있다. 나는 그의 하인이 자신의 상전을 위해 물을 길러 온 것을 만났으며, 우리의 물통은 같은 우물 안에서 숙명적으로 부딪친 것이다. 월든 호수의 맑은 물은 이제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물과 섞이게 되었다. 월든 호수의 물은 순풍을 만나면 전설적인 아틀란티스 섬과 헤스페리데스 섬을 지나 대항해가 한노가 들렀던 바다를 다시 돌 것이다. 그리고는 테르나테 섬과 티도레 섬과 페르시아만 입구를 지나 인도양의 열대 강풍에 녹을 것이며, 알렉산더 대왕도 이름만 들어본 항구들에 도달할 것이다.

p.441, ch.16 겨울의 호수 중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을 추가로 언급해 보자면, 글의 톤이 지나치게 가르치려 하는 듯하다는 것이었어요. 소로우가 이 책을 썼던 것이 30대 초반이었다고 합니다. 청교도적인 삶에서 비롯한 금욕적 생활을 추구하던 그는 젊은 나이에 자기 확신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육식동물이란 것은 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물이야 말로 현명한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음료라고 생각한다. 술은 그다지 고상한 음료가 아니다. 아침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커피로 꺼버리고, 저녁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차로 꺼버리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런 음료들의 유혹을 받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천박하게 느껴졌던가!
음악마저도 도취적인 요소가 있다. 보기에는 사소한 그런 원인들이 그리스와 로마를 멸망시켰으며, 영국과 미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뭇 사람들이 그처럼 열심히 좇는 유행을 만든 사람은 바로 사치와 방탕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위와 같은 문장을 읽으며 우리 독서모임 회원들은 각자의 이유로 소로우에게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움을 표현했지요. 무소유를 설파하셨던 법정스님의 글을 읽을 때는 그저 편안했는데, <월든>의 일부분에서는 일종의 반발심 같은 것이 생겨달까요. 저는 뭔가를 말할 때 그 '방식' 또한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특히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솔직히 고기와 술과 커피와 차와 음악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월든 호수 (이미지 출처: 트립어드바이저)


월든 호수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과연 소로우의 말처럼 물이 유리처럼 투명했고,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풍경이었습니다. 소로우가 오바하는 것이 아닌가 눈을 게슴츠레 글을 읽었었는데, 사진으로 본 호수는 정말이지 아름다워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으로 느껴지는 감동이 이 정도라면 실제 모습은 어떻단 말일까요. 이 호수에서 매일 아침 수영을 하며 유유자적 하는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소로우의 말처럼 내가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내 마음의 북소리에 맞추어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또래들의 보조을 맞추려고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작년에 대상포진에 걸렸던 건 아무래도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을 잃지 않을 만큼만 일해야 한다는 것, 건강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일을 하다 보면 그 선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시스템상 스스로를 돌보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이니까요.


비록 소로우의 모든 말을 이해하고 동의하지는 못했지만, <월든>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 마음을 비워내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덧붙여, 현대인의 화두인 마음 수련. 미니멀 라이프. 1일 1식. 비거니즘. 명상. 자연. 숲 등의 최전선에 <월든>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고전의 위대함을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언젠가 미국에 다시 간다면, 월든 호수를 꼭 방문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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