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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11. 2020

Dear.Jade_족보에서는 할머니를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 이름 석자 조차도 -



명절만 되면 장손이시던 나의 아버지는 장손에서 오는 사명감 또는 의무감에 그런 건지, 아니면 제사 준비하는 할머니와 엄마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를 불러 앉혀 놓고는 족보책을 꺼내 드셨다.

그리고는 "니도 나중에 다 알아야 된다. 이 분이 증조할아버지고, 아빠한테는 할아버지가 되는기라." 하며 읽을 수도 없는 한자들을 짚으시며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그때마다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나는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여야 했는데,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해주시는 이야기들은 보통 30초를 넘기기 어려운 단편들뿐인 데다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도 몇 없기도 했다.

그러니 그런 정보들을 유추해서 증조할아버지를 떠올리는 건,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했던 내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족보와 아버지의 이야기만으로는 돌아가신 옛 할아버지들께서,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생각을 지니셨고, 어떤 사랑을 하셨는지, 어떤 점에서 행복을 느끼셨고,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는지 그런 것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점들을 알고 싶어 했다. 

물론 족보의 기능 자체가 세대를 기록하는 용도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런 족보의 존재가치에 비해 기록의 형태가 항상 아쉬웠다.  

집안의 역사를 중시하시던 아버지와는 달리 족보책은 앞선 까닭들에 나에게 말 그대로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특히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전혀 쓸모없는 책으로 전락해버렸다. 








군대를 전역하고 처음 맞이하는 설 명절에도 아버지는 똑같이 족보를 꺼내 드셨다. 

병장 만기 전역임에도 나는 똑같이 지루함을 느꼈지만, 군대까지 나온 아들의 의젓한 모습을 기대하는 아버지의 암묵적 요구를 수행하느라 지루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대신 죄송했지만 딴생각을 했다. 족보를 좀 더 재밌게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곧바로 친구 둘에게 이런 이야기와 고민을 터놓았다. 

"아니 족보책을 대체할만한 뭔가가 없을까? 심지어 지금 족보책은 남자만 이름을 남길 수 있잖아.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까지 담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이내 흥미를 느낀 친구들은 이 고민에 함께 동참해주었다. 

그때 만들었던 게 바로, '이.바.구'였다. 

''' 세상을 '' 꾸는 ''구절절한 우리네 이야기'라는 뜻의 사회적기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라는 뜻인데, 우리 셋 다 경상도 출신이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글과 이야기를 받아서 족보를 대체할만한 자서전을 만들어주고, 그 수익금으로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무료로 자서전을 한 권씩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였다. 


시중에 나와 있던 자서전 관련 책들은 거진 다 빌리고 사서 연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어떻게 하면 글과 사진들을 사람들에게서 편하게 받을지, 어떤 질문들을 묻고 답을 받을지 등등 여러 고민들로 날밤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일은 실행 직전에 무산되었다. 

무산된 이유는 거창할 것 없이 내 능력의 부족이었다. 스무네 살이던 나는 두려웠다. 

이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부족했고, 이런 일을 할 만큼의 그릇 인지도 확신이 부족했다. 

유보하기로 결정이 난 뒤, 그 길로 나는 여행을 결심했다.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고 싶었다. 도피였는지 도전이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그렇게 나는 인도에서부터 시작해 1년 동안의 자원봉사활동  여행을 떠났다. 


이제는 이 일을 할 만큼의 그릇인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아직도 그 대답을 명쾌히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여러 일들을 돌아 돌아 결국 다시 이끌려 온 일이 이 일이라면, 

몽상으로만 그쳤던 그 일들을 이제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시 그렸던 비즈니스 모델 구상도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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