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네가 뭔데

그를 향해 던지는 나만의 성과평가

by 양지음

좋아서 선택한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취업이라는 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취업이니 진로니 하는 부분에 대해 무엇 하나 명확하게 생각하거나 준비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 가장 좋은 선택지로 보이는 걸 선택한 게 다인, 그런 직업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돈을 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월급’을 주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그런 하루들을 어떻게 모아 삶을 영위하는지, 별생각 없이 시험을 준비할 때는 정말 몰랐다. 그래서 내게 회사는,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기 위한 땔감(돈)을 공급해주는 곳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어쩐지 불확실해 보이는 글 쓰는 삶에, 소속된 곳이 있단 안정감까지 덤으로 주는 곳. 그래서 꼭 합격하고 싶었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준비기간 끝에 원하던 바를 얻었을 땐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할 만큼 행복했다.


그게 나의 봄, 여름이었을까. 합격만 하면 될 거 같았던 날들이 지나고 나니 갑자기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합격’이라는 어마어마한 수확을 얻긴 했는데, 갑자기 해가 짧아지고 가을, 겨울이 다가오는 듯하더니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오로지 글 쓸 시간을 조금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어쩌면 불순한 기대 하나로 들어온 곳이었는데, 일반적인 직장과 같은 9-6 업무시간에다 불규칙한 야근을 해야 하는 환경으로 배치를 받았던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햇살만 짱짱할 줄 알았던 내게, 그건 생각보다 큰 시련이었다. 원래도 없었던 체력을 시험 끝까지 몰아서 쓴 탓에 일을 시작한 뒤로는 무언가 다른 활동을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글? 이럴 거면 죽을까, 그냥 다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견뎌내는 일만으로도 벅찬 하루들이었다. 일하고 남는 여가 시간에 글 쓰느라 힘들 그런 각오는 했지만, 한겨울이 찾아올 것은 예상하지 못하고 마음의 패딩 하나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얼어붙기 시작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참은 게 2년, 또 다른 연옥(회사 바깥은 지옥이라니까, 회사는 연옥 정도로 해두자.)으로 배치 받은 지도 벌써 거의 1년. 바보같이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월급은, 스스로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내놓은 대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회사 안의 생활은 얼마나 단조로운지(물론 면면이 보면 전혀 단조롭지 않고 다이내믹한 순간의 연속이지만.) 나는 구내식당에서 주는 밥 잘 챙겨 먹고 울타리가 쳐진 사무실 안에서 방목당하며 적당한 생산력만 보이면 되는 가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이 직장을 선택한 이유가 뭐였더라? 나는 생의 끝자락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더라? 그런 질문은 할 겨를도 없었고 할 생각조차 없어진 내가, 사무실 한편에서 오늘도 말 잘 듣는 막내쯤이 되어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보람은 가끔 있고(슬픈 건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있다.), 의미는 없는 업무들 사이에서 민원인에게 욕먹느라 병이 생기고 상사에 후배 눈치까지 보느라 말라붙은 겨울나무 같이(실제로는 스트레스성 과식으로 돼지가 되어 마음만) 앙상해진 내가.


그래, 아무 스펙도 없는 내가 이 정도 돈이라도 받으려면 내 하루의 절반 이상은 회사에 바쳐야지. 내 열정은 일하는 데 쏟아부어야지.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라는데, 그래도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니까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 이 바보가. 그런 생각들로 버티던 내가, 죽어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마음부터 시작해서 영혼이, 그리고 이제는 몸까지 고장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어떤 변명도 집어치우고 그냥, 쓰기 시작했다. 마음 맞는 대학 동기와 무료 메일링 서비스로 각자가 쓴 글을 발행하기도 하고, 내내 마음에만 두고 있던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년 이맘때쯤엔 내가 이미 부서져 사라지고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회사 생활이 달리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회사는 이제야 정말로 내 글쓰기를 위한 땔감을 내어주는 곳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땔감을 어떻게 잘 비축해 언제 얼마만큼 쓸지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다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죽어도 그 안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마음속의 암담한 얼음이, 그렇게 깨어지기 시작했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회사를, 직장을 그렇게 꿈을 위해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연료 공급처 정도로만 생각해도 되는 거냐고. 그러나 내가, 겨우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얻은 깨달음에 따르면 그게 맞다. 회사는 나를 배려하지 않고, 내 인생을 위해주지 않으며, 위해줄 이유도 없다. 그곳은 그저 오로지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형성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일’인, 그래서 이상하고 아름답…지 않은 그런 곳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그가 나를 책임져주지는 않으며, 그로 인해 돌아올 몸과 마음의 공허함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 뒤에 남을 내 인생 또한, 그러할 것이다.(이렇게 말하지만, 완벽주의로 인해 맡은 바는 또 열심히 하다 보니, 결국 맡는 일이 자꾸만 늘어나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삶의 선택권을 스스로 쥐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요즘 들어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는, 다른 이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따라 살 권리도 있지만 또한, 남들은 걱정하고 좋아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삶을 이어나갈 권리도 있다. 그래서 내게 요즘의 회사는, 내가 앞으로 얼마나 마주할지 모를 삶의 겨울마다 쓸, 장작을 패러 가는 숲이다. 비록 어제의 회사는 나를 사육하는 사육장이었을지라도, 앞으로의 회사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일인 것이다.

그렇게, 마치 그가 나의 성과를 평가하듯 나도, 그의 성과를 평가해 앞으로 삶의 방향을 선택해 나가리라 다짐해본다. 다시는, 그 울타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그 안에서 안주하거나 두려워만 하다 얼어붙지는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