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공간
마티즈만 타던 내 일상에 아반떼 들이기
얼마 전 언니가 3개월 넘게 버텼던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중고차 하나를 구입했다. 2015년식 아반떼. 연식이 조금 됐어도 사용감이 많지는 않은 차였고 깔끔하게 잘 관리된 차를 적당한 가격에 구입했지만,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에서 느끼기엔 큰 지출이었다. ‘카푸어’가 그렇게 많다던데, 우리도 카푸어 아니냐고 말하며 장난스레 웃으면서 처음 차를 데려오던 그날 언니도, 나도 그 벅차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감정에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사실 우리 집에는 이미 오래된 마티즈가 한 대 있다. 큰 차는 싫다고, 이 정도 차면 대만족이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출퇴근용으로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사신 빨간색 중고 마티즈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문짝 닫기는 소리가 쿵쿵 나기도 하고(온 동네에 울려 퍼져서 창문 닫고 집 안에 있어도 아버지가 오셨는지 알 수 있는 정도다.), 선바이저가 오래되어 다 부서져 있는 수준이었다.(잘못 그린 눈썹처럼 그 부분이 계속 신경 쓰여 결국 얼마 전에 자체적으로 교체에 도전했고, 다행히도 성공했다.)
요 녀석이 참 정감 가긴 하면서도, 원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회사를 다니다 보니 한 번씩 아버지 차를 얻어 타고 퇴근이라도 하려고 치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우리 아버지가 연식이 오래된 빨간 마티즈를 타고 다니신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건 아닐까, 누군가 우리 집을 무시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말이다.
그러다 이번에 (내 차는 아니지만) 집에 차가 한 대 더 생기고 나니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글쎄 어쩌다 한 번씩 날 데리러 와주시는 아버지 차는 여전히 빨갛고 오래된 마티즈인데, 그걸 타고 다니는 내 마음은 아반떼를 사기 전과 달라진 게 아닌가.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티즈만 있던 시절에는 우리 집 차가 오래된 마티즈 한 대뿐이니 그만큼 형편이 어려운 것만 같아 남들 시선이 신경 쓰였는데, (좋은 차는 아니라도) 마티즈 녀석보다는 나은 차가 집에 하나 더 생겼으니 마음이 갑자기 떳떳해졌던 거였다.
내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혼자 실소를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집 형편이 어떤지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지도 못하는데, 심지어 타는 차는 여전히 그 전과 같은 차면서 남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반떼 때문에 떳떳해지다니. 1차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애마를 부끄러워한 내가 죄송했고, 2차로 ‘우리 집엔 차가 2대 있고 다른 차는 얘보다 좋은 거야.’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치켜세운 거 같은 내가 부끄러웠다.
‘아,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러나, 뜻밖에도 삶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매일같이 ‘일하는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공허함에, 하루하루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일상이기만 했던 요즘의 나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이랄까. ‘일하는 나’밖에 없는 일상을 ‘마티즈’밖에 탈 수 있는 차가 없는 걸로 비유한다면, 그 외에도 내가 탈 수 있는 ‘아반떼’ 같은 활동 하나를 더 들여놓아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엉뚱한 깨달음을.
‘내 일상은 일하는 것밖에 없어.’라고 생각할 때와 ‘나는 일도 하지만 글도 쓰고 또 다른 하고 싶은 일도 하며 살고 있어.’라고 생각할 때, 내 마음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 같다. 마치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지만, 새로 들어온 아반떼가 내 자신감에 여유를 만들어 줬던 것처럼. 사실 처음부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티즈’만으로도 자신감이 넘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런 나의 부족함 덕분에 일상에 ‘아반떼’만큼의 여유를 만들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여전히 우리 집은, 나는 물질적으로 ‘푸어’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내 일상만큼은 빈곤하지 않은 ‘직장인’으로서 오늘 하루도 충만하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그리고 마침내는 내 일상의 마티즈도, 아반떼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모든 게 결국은 나를 구성하는 나의 구성요소들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