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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Jan 08. 2021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희망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만난 어른

  휴직 D-2일, 그러니까 이제는 작년인 2020년 12월 30일. 연말에 휘몰아치는 업무에다 인수인계를 위한 준비까지 엎쳐져 나는 며칠을 정신없이 야근하느라고 직원들이 돌아가며 서는 출입구 체온검사 당번인 줄도 모르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내 앞 당번이셨던 다른 과 팀장님이 주신 전화에 급하게 현관으로 가 멍 때리고 있었던 내 당번 시간은 17-18시.


 퇴근시간이 다 돼가자 조금씩 분주해지던 현관 복도 계단으로 2층에서 우리 과 과장님이 갑자기 내려오셨다. 나를 보러 오신 건지, 지나던 길에 내가 보여서 오신 건지 모르겠지만 슬그머니 당번 서는 내 옆으로 오셔서 말을 거시던 과장님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우셨던 게 기억이 난다. 평소에도 과 직원들을 잘 챙겨주시고 참 좋으셨던 과장님은 내 휴직 의사 표시에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위해 주셨다.


 무턱대고 과장님 하고 싶은 얘기만 하시거나, 어른으로서 충고하는데 휴직하는 것보단 참고 버티는 게 낫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던 과장님은, 내 얘기에 ‘많이 힘들었구나.’ 하시면서도 나중에 내 커리어나 승진을 걱정해 ‘휴직을 조금 더 짧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내 의견을 물어보셨다. 그마저도 이런저런 사유로 6개월 쉬는 게 나을 거 같단 내 얘기에 알겠다고, 잘 선택했다고, 푹 쉬면서 몸조리 잘하고 오라고 해주셨던 과장님.


 그 날도 옆에 오셔서 “인제 새해부터는 얼굴 못 봐서 아쉬워 어떡하누.” 하고 말씀하시면서 과장님이 막내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말 늘 야근하고, 열심히 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때에는 과장님도 참 많이 혼나셨다고, 그전부터 전임자들이 해오던 대로 일하지 않거나 과장님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바꿔서 기안을 작성하거나 하면 그 당시 과장님의 과장님이셨던 분께 “네가 틀렸어, 원래 하던 대로 해.” 하고 참 많이도 깨졌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그래도 돼. 지금은 지금의 방식이 있고, 그걸 따라가는 게 맞지.” 하고 얘기하시는 과장님 얘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내 안에서 ‘어른’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서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도 희망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람.’


 그래, 어른은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상황을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어도, 설령 그게 자신에게는 익숙한 상황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현실과 다른 삶의 모습도 희망하고 응원할 수 있는 존재. 평소에도 몸소 보여주신 모습이 있으셨기에 그런 과장님의 이야기는 그저 말뿐인 허울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배울 점 많은 직장 상사이자 닮고 싶은 어른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오래 지쳐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슬며시 녹아내렸다.


 조금만 더 빨리 우리 과로 와주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 만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같이 일하고 싶은 우리 과장님. 더 많이 표현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과장님이 계셔서 견딜 만했다고, 참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디 다음에 과장님과 함께 일하게 될 때에는, 나도 과장님 같은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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