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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Jan 09. 2021

정리가 필요한 이유

사소한 책상 정리 끝에 쓴 더 사소한 일기

 일하는 공간에 마음을 잘 붙이지 못하는 탓에 사무실에 갖다 놓은 물건이 몇 개 없긴 했지만, 그래도 방석이나 사무실용 슬리퍼 같이 꼭 필요한 용품들은 가져다 놓고 쓰고 있었다. 이런 용품들은 계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바로 다음 발령지로 들고 가기 때문에 굳이 집으로 돌아올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휴직을 하면서 모두 다 오랜만에 컴백홈(?)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그리고 신년을 맞아서 시작한 방 정리 및 청소. 치워야 할 것은 참 많지만 일단은 책상과 책장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책장은 언니와 함께 쓰고 있는 터라 은근슬쩍 언니를 협박(?)해 언니가 읽지 않는 오래된 책도 좀 꺼내놓고, 이제는 버릴 수 없는 이유도 사라진 채로 책장 끝에 걸터앉아 있던 인형 두어 개도 정리해 내놓았다.


 책상도 비슷하게 정리를 끝내고 나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책들을 빼앗긴(?) 언니가 지나가다 말고 ‘우와, 진짜 깨끗해졌네.’하는 감탄사를 내뿜어줬다. 그렇게 깔끔해진 책상 앞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던 게 정확히 한 주 전. 지금의 내 책상은 ‘언제 정리란 걸 했을까...?’ 하고 내게 되묻는 듯 꽤나 어질러져 있다.


 그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며칠 전부터 어디에 뒀는지 아무리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한 앞머리 핀을 발견했다. 아뿔싸. 도대체 언제 무슨 정신으로 여기다 이걸 빼놨을까. 암만 생각해 본들, 그게 기억날 정도였으면 핀이 여기 있다는 사실도 진즉에 알았겠지. 그러면서 그 핀 대신 새롭게 꺼내 꼽고 있었던 앞머리 핀을 슬며시 핀들을 모아두는 화장대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래, 이런 식으로 제자리를 잃은 물건들은 정말 잃어버린 게 아닌데도 불필요하게 대체품이 필요해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도 분명 지난달 사무용품 구입 때 사놓은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꼭 새로 사고 나면 보이는 물건이 있는 것처럼, 물건이든, 일상이든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자꾸만 갈피를 못 잡고 그걸 채울 만한 비슷한 것들이 새로 필요한 거구나 싶은.


 어쩌면 오늘 하루, 하고픈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 마음도 사실은 있어야 할 곳에 놔두지 못해 내가 까무룩 잃어버렸던 건 아닌지. 어느 자리에 놔둘 때,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나는 나다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좀 더 알아봐야겠다. 혹시나, 이대로 계속 그저 살아가다 어느 순간 진짜 내 마음이 아닌 무언가가 내 ‘진심’을, 나란 존재를 대체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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