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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Apr 27. 2021

TV를 끌 수 없는 이유

나 홀로여행의 첫 관문, 두려움과 외로움 사이.

 난생처음으로 조금은 긴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계획적인 성향이지만, 심한 완벽주의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은 나는, 우습게도 그래서 매번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품절 주의 사태가 우려돼야만 어떤 일을 할 용기가 생긴다. 시작은 질러놓고, 그 뒤의 일은 계획해서 진행해야 마음이 편안한 스타일이랄까.


 모순적인 것만 같은 즉흥과 계획이 맞물려 이어진 근 한 달짜리 여행. 어쩌면 조금은 부끄럽고, 당황스럽게도 나는 지금껏 나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더불어 길지 않은 여행에서도 늘, 안전에 대한 우려와 불안이 심해 함께 간 동행과 숙소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초긴장 상태로 어딘가를 돌아다닌다. 그런 스스로를 잘 알기에 이번 여행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걱정이 컸다. 혼자일 때는, 숙소에 들어가서조차 안심하지 못하고 잠을 설치는 자신을 얼마 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유*브나 OTT 서비스가 나온 뒤로 집에서는 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TV를, 숙소에 돌아옴과 동시에 틀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은. 공허하고 적막한 이 작은 방의 공기를 단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해 마치 오랜 습관처럼 TV를 켜는 나. 그리고 그런 내게, 한때 바보상자라 불렸던 명성에 걸맞게 다른 무엇도 하지 말라 종용하는 그.


 그렇게 나의 여행은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고 해가 지기 전까지 밖을 돌아다니다 저녁을 사냥해서(?) 돌아오고, 숙소에 옴과 동시에 바보상자를 켜 하루를 마감하는 일정한 흐름을 갖게 되었다. 분명 숙소에만 돌아가면 오늘 하루 여정을 정리하고, 나를 되돌아보고, 아까 떠오른 글감도 끄적여 봐야지 했던 소소한 다짐들이 헛된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작은 어쩌면 너무나 즉흥적이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혼란을 잠재우고 싶어서 시작한 혼자만의 여행이었는데. 조금 더 조용히, 자신에게로 침잠하는 시간이자 한편으로는 끊어냈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만들어 보는 시간이기를 바랐던 그런 여행이었는데 정말로. 그러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두려움과 외로움은 바보상자라도 친구 삼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둡다는 걸 난생처음 혼자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문득 지친 하루, 홀로 돌아온 원룸 방 안에서 오래된 친구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그의 끊임없는 수다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을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의지해 마지않던 오랜 벗을, 그 벗과 함께하고 싶어 했던 그를, 이해하지 못해 미워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으면서도, 그토록 매일 저녁 외로움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던 그를 모른 척한 죄로 나는, 오늘도 여전히 TV를 끄지 못한 채 잠이 드는 걸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때때로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을 한 나의 자만인지. 같은 곳을 베이고서야 그때 그가 흘리던 눈물이 사무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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