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밤
그대의 일상을 여행하며.
여행을 시작한 지 3일째. 하루 종일 만 칠천 보가 넘는 걸음을 걷고 돌아온 숙소에서도 잠에 잘 들 수 없는 스스로를 만나는 건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딱한 기분이다. 꽤나 심각한 방향치에 길치지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스마트폰 지도 어플을 켜고 다니니 그 정도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일이라 괜찮다. 다만, 어디에서도 편안하지 않은 스스로를 만나는 일이 너무 버거운 하루였음을 부정할 수 없어 마음속에 자꾸만 슬픔이 차오르는 기분.
혼자 나선 여행길은 모든 게 긴장할 일 투성이라 예쁜 풍경을 찾아 걸어 다니는 길 위에서도, 지쳐 돌아온 숙소에서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순간을 즐기거나 쉴 수 없었다. 적당한, 혹은 적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인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 사이를 혼자서 돌아다닌다는 건 왜 이렇게 불안하고 긴장이 되는지.
하필이면, 여행 와서 처음으로 구경 나간 날 모르는 아저씨들에게서 시비가 걸릴 뻔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아도 그런 불안감이 좀 있었는데, 그게 정말로 눈 앞에 나타난 일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자 혼자 다니는 게 조금은 더 만만해 보였는지, 볕 좋은 광장 근처에서 술 마시던 아저씨들이 한 명은 "야! 야!" 하고 소리 지르며 나를 부르고, 또 다른 한 명은 "아가씨!" 하면서 부르는 게 아닌가. 그들과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는데, 그 근방에 지나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도 날 부르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 했다. 다른 한 명이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그 '야'가 나일 리는 없다는 믿음으로 더 편안하게 나는 그 옆을 지나쳤겠지.
딱히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를 일도, 그렇게까지 내 마음대로 하는 일도 없는데 왜 이토록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들 사이에서 치인 마음에는, 쏟아지는 햇빛과 예쁜 풍경으로 치유받던 경험도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딘가로 이동하면 할수록, 무언가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차오르는 슬픔과 무력감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정말로 약물 치료를 받아보는 게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럼에도 한 가지, 오늘의 힘듦을 상쇄할 수 있게 한 건 장 보러 다녀오는 길에 느낀 순간의 감정들이었다. '여행지에서 한 달 혹은 그 이상 살아보기'와 같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곳의 일상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준 감정들. 내게는 늘, 여행지이자 관광지이기만 했던 이 곳 또한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그들의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곳이라는 점. 그렇게, 내가 여행 온 이곳이 그들의 일상이듯, 나의 일상 또한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이 살아낸 오늘을 담은 이 공간이, 어쩌면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온기 어린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사실이 조금은,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자꾸만 주눅 드는 어떤 '혼자'에게 말도 안 되는 위로와 위안이 되기도 한다는 점.
그렇게 나는 또, 사람이 뱉어내는 지독함을 사람이 내어놓는 온기로 한 번 더, 덮어 안아 보고자 한다는 것. 그런 밤, 그런 하루. 내일은 조금 더 숨 쉴 만한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