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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Oct 29. 2022

TV를 끌 수 없는 이유

두려움이 뒤섞인 혼자만의 시간

 내 인생에 자취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 혼자 자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환경이 바뀌어도 머리만 닿으면 자고, 잠귀가 어두워서 잘 깨지도 않는 나였지만, 딱 한 가지 문제(?)라면 바로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한다는 거였다.


 딱히 어떤 일을 겪은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닌데. 왜인지 모르게 집 안에 오롯이 혼자 있을 때면 불을 끌 수가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다. 게다가 첫 숙소의 구조가 여느 오피스텔들처럼 현관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를 지나야 침대가 나왔기 때문에, 자려고 누우면 발치 너머 어두운 복도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볼 것도 없는 TV를 끄지 못 한 채, 아스팔트에 드러누운 고양이처럼 이불에 부비적거리길 몇 시간째. 벌써 새벽 1시였다. 일찍 자야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을 테고, 그래야 조금 더 조용한 여행을, 조금 더 길게 할 수 있을 텐데.


 생각으로는 알고 있는데도, 몸이 안 피곤한 게 아니었는데도 도무지 잠에 들지를 못했다. 차라리 TV를 켜놓은 채로 잠이 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 이도 저도 싫은 게 그냥 울고 떼쓰고 싶은 마음이었다.(내 나이...)


 그런데 그때 마침 언니가 여행 때마다 유용하게 썼다던 다*소의 이천 원짜리 무드등이 생각났다. ‘아차!’ 싶은 마음에 캐리어로 달려가서 뽁뽁이로 무장한 무드등을 꺼내든 나. 그걸 TV 옆 멀티탭에 꽂고 전용 리모컨까지 손에 꼭 쥐고 난 뒤에야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TV는 못 끈 상태였지만, 이제는 TV를 꺼도 빛을 내는 광원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나름 든든했던 것 같다.




 핸드폰 속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미지의 존재가 까꿍 할 것만 같은 침대 발치와, 집에 두고 온 내 베개가 그리워지는 근육형 베개(목이 45도로 들리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그때쯤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서야 알았다. 그 짧은 여행 기간만으로는 익숙해지지 않는 두려움도 있다는 걸.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도 익숙해지지 않을 두려움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함께.


 그러나 그때 그 밤들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배울 수 있었을까. 어둠 속에 혼자라는 두려움을 안고서도 잠드는 법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꼭 한 번은 그런 시간을 거쳐 간다는 것을. 잠들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고, 지나친 상상력이 미웠던 그 나날들 덕분에 나는, 비록 꿀잠을 자진 못했으나 마음이 반 뼘쯤은 성장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미 스무 살 언저리에 경험했을지도 모를, 혼자만의 생을 온전히 견디는 기분.


한 달 살기 여행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두려움을 마주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여행 후의 나는 그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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