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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Oct 29. 2022

좋아, 자연스러웠어.

제주도, '처음'이 가져다준 느낌

 코로나가 만 1년을 넘긴 지 얼마 안 된 시점. 오랜만에 내린 제주공항은 생각보다 더 북적거렸다. 여름 휴가철도 아닌데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제주도로 놀러온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마스크만 빼면 모든 것이 다 코로나 이전 같아 보였다.


 혼자서 조용히 짐을 찾아, 줄 서 기다리던 순서대로 올라탄 공항 택시. 미리 목적지를 찾아놓지 않고 타버린 탓에 처음엔 숙소 근처 삼거리를 말했다가 또 그 근처에 가서는 버벅거리며 인근 공원에 내려달라고 겨우 말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은근 볼멘 소리로 “처음부터 어디라고 말해야 알지.” 하시면서 나를 짐과 함께 내려놓고는 떠나가시는 게 아닌가.


 괜시리 뻘쭘한 마음에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고, 질질 끌려 오는 커다란 캐리어 바퀴가 이륙하는 비행기 바퀴 소리를 내서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 당당하게 걸었다. 마치 제주도에 계절마다 놀러 오는 사람처럼. 여기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그리고 몇 발자국 못 가 길을 잃었다.(스마트폰은 나 같은 길치들을 위해 태어난 거라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길 건너 공원에 내린 덕에, 오르막과 내리막인 것만 빼면 적당한 거리를 걸어 첫 숙소에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 차를 갖고 휴양 목적으로 온다면 굳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내 레지던스에, 그것도 평일 대낮에 도착해서 보니 오히려 거기가 훨씬 조용하고 한적했다.


 되도록 높은 층으로 배정해 달라던 요청을 나름 들어주셨는지 10층 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가려 햇빛을 잃어버린 우리집과 다르게 쨍쨍한 햇살과 파란 하늘이 얼마나 이쁘던지.(그러나 그 햇살이 너무 강렬해 아침마다 눈을 찌르고, 바로 앞의 오래된 호텔과 옥상 주차장에서 방 안이 너무 잘 보이는 통에(…) 며칠 뒤 흰 커튼을 사다 달아버렸다.)




 모든 ‘첫’ 시작이 그렇듯, 이 한 달 동안의 여행기도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려보겠단 마음으로 이리저리 숙소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리고 아직은 서로가 어색한 숙소에다, 별 거 없는 내 살림살이를 한두 가지 꺼내놓고 신발장 앞 복도에 캐리어를 펼쳐놓은 채로 잠시 숨을 골랐다. ‘여기가 이번 여행에서 제일 오래 함께할 내 공간이구나.’


 낯섦에서 오는 불안함과 함께 아주 작은 설렘이 마음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한 번도 원해본 적조차 없었던 혼자 살기를 시작하는 순간이라 그랬을까. 내 인생에는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신기함이었는지, 모든 게 생경하고 새로워서 마음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낯섦이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제주도에서의 첫 하루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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