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예민함은 나의 무기
사람들은 나를 보고 종종 무던하다고 말한다.
웬만한 일에는 화도 안 내고
늘 착하고 둥글둥글한 사람 같다고.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전부 맞는 말도 아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침착한 표정을 짓지만
마음 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복이 오간다.
사소한 말 하나에도 상처받으면서 오래 곱씹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오래 곱씹으면서 합리화하고
괜히 한 장면을 붙잡고 혼자 반성회를 열기도 한다.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게 더 이상 싫어서
혹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대부분의 감정은 삼키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참고 넘기는 일이 많아
그 덕분에 무던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을 쌓아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이유 없이 지치는 날이 온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히 피곤하고
사람이 부담스럽고
혼자 있고 싶어지는 날들.
그래
비로소 나 스스로가 예민하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무던해 보이는 나를 조금 버리고
예민한 내 마음을 조금 더 챙기려고 한다.
예민해서 사람을 챙길 수 있었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 흔들리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말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진짜 감정을 가늠한다.
조심스러울 수 있었고 다정할 수 있었다.
예민해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아무 일 없는 일상 속에서도 좋았던 순간을 포착한다.
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고 멈춰선 뒤
다시 걸어서 나의 삶을 이어나간다.
이게 내 예민함이 나에게 준 것들이다.
쉽지는 않았지만 분명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키워준 것들.
나는 조금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고
그만큼 조금 더 많이 받아서 안고 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