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넘는 햄스터, 그렇지 않은 기니피크

나는 햄스터인가? 기니피그인가?

by 이 작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들은 대부분 귀여운 강아지에 꽂히게 되는데 우리 딸도 다르지 않았다. 평상시에 관심이 없었던 애완견의 세상에 대해 난 곧 딸 덕분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견샵에 간 후 포메라니안, 웰시코기, 푸들 등 주요 견종들의 특징과 '가격'을 알게 되었다. 얼굴이 이쁜 푸들은 더 '비싸'다는 것도 알았다.


이때쯤이면 아이들을 설득하여 보다 저렴하지만 귀여운 햄스터로 눈을 돌린다. 햄스터를 집에 들여놓고 여러 용품들을 사다 놓으면서 일단 가격이 나름 저렴하다는 것에 안심을 한다.


'저 조그만 놈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


그런데 햄스터의 세계도 놀랍다. 여러 종류가 있고 종마다 특성이 다르다.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세 마리가 된다. 신기한 것은 햄스터는 '육식'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옆에 있는 햄스터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햄스터는 1개 종을 제외하고는 단독 케이지에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혹시 모르는 미래 햄스터 아빠가 될 분을 위해 알려드리면, 햄스터는 '야행성'이다. 즉 밤에 챗바퀴를 신나게 탄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야밤에 햄스터의 쳇바퀴 도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햄스터 집은 거실로, 베란다로 밀리고 점차 관심에서 멀어졌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햄스터로는 만족이 안된다. 누구 말처럼 햄스터는 '관상용'이다. 감정적 교감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햄스터가 강아지를 대체하기는 결국 불가능하다. 그때 찾은 대안이 바로 '기니피그'이다. 기니피그는 햄스터보단 능동적이다. '꾸욱 꾸욱' 소리를 내며 감정을 표현한다. 밥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기니피그는 어느 정도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다. 강아지처럼 매일 운동시키거나 모시고 살지 않아도 된다.


기니피크가 우리 가족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는 건가? 갑자기 '삐익 삐익'하는 기니피그의 아우성이 터져 나올 때 '재가 왜 그러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심코 우리가 뭔가 먹을 걸 주기 전에 하는 반복된 행동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신기했다.


그러데 어느 날 햄스터와 기니피크를 비교해보면서 크게 깨달은 게 있다.


햄스터는 케이지에 넣어놓으면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육식이어서 그런지 순하다기보다는 투쟁적이다. '어떻게 저 케이지를 뛰어넘었지? 저 작은 몸으로 뚜껑을 밀고 나온 거야?'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다.


반면에 기니피크는 토끼처럼 전형적인 초식동물이다. 소리에 민감해서 방귀만 뀌어도 휘리릭 구석으로 도망가기 바쁘다.


그런데 햄스터와는 달리 기니피크는 살짝만 밀면 넘어질 정도로 약한 철장으로 둘러싸 놓아도 절대로 그걸 밀어 넘어뜨리지 않는다.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탈출하려고 별짓을 다하는 햄스터와는 달리 기니피크는 앞에 조그만 벽이 있으면 아예 밀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벽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


나는 그걸 보고 '내'가 떠올랐다. 저 기니피그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앞에 놓여있는 벽을 뛰어넘으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는가? 내 앞에 있는 저 벽이 사실 툭 건드리면 넘어지는 '기니피그의 철장'이 아닐까? 그렇게 내게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며, 내게 놓여있는 울타리를 의심하지 않으면 그렇게 살아온 게 아닐까?


기니피크 케이지에 햄스터를 넣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한 시간도 안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햄스터보다 몇 배나 큰 기니피크는 작은 집에서 그저 왔다 갔다 안주하고 있다. 큰 소리에 휘리릭 도망 다니면서.


그동안 난 '안전함'을 얻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그래서 난 지금 '안전'하다. 내가 쳐놓은 내 삶의 철장은 기니피크 집만큼 안전하다. 나는 이게 무너질까 걱정하고, 아끼고,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남은 게 안전함 뿐이다.


'설렘을 느끼며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고 마지막으로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게 언제였던가?'


이제는 '안전'을 딛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그동안 안전하기 위해서 쏟아부었던 열정을 이제 '나로서 살아가는 데' 쏟아붓기로 했다. 이미 늦은 것인가? 아니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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