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작가 Jun 01. 2022

'오케이 플래토' 벗어나기

'연주'를 향한 '진짜 연습'을 위해

"나는 남 앞에서 왜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없을까?"


피아노를 혼자 연습하면서 항상 어떤 좌절의 벽을 만난다. 정말 만족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어려워서 엄두도 못 내던 곡들도 연습 초반에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숙달된다. 악보를 처음 펼쳐 들고 고통스러운 며칠이 지나면 멜로디가 살아나고 양손이 함께 '어디서 들어본 음악'을 흉내 낸다. 열정은 넘쳐나고, 조금만 노력하면 '완성'에 도달할 것 같은 희망에 가득 찬다.


하지만 단기간 내에 익히기 어려운 '어려운 파트' 앞에서 위기에 빠진다. 폴리 리듬처럼 어려운 박자, 정확하고 빠른 스케일, 물 흐르듯 한 아르페지오, 폭이 큰 도약 등은 사전에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으면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가 없다.  


'어려운 파트'를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극복해보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루함, 인내,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온다. 열정은 점차 얕아지고 이내 곡에 흥미가 떨어진다


'내가 프로 연주가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연습해야 하나? 한 곡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나? 이 정도만 연습해도 실력이 쌓여서 다음 곡은 쉬워지지 않을까?'


딱 여기까지였다.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곡으로 갈아탔다. 매번 썸만 타고 연애를 못해 본 사람처럼 '연습'만 하고 '연주'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에서 나온 '오케이 플래토'에 대한 설명이 가슴에 와닿았다. 


계속 연습하던 것을 어느 순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서 만족하는 수준, 임무가 자동적인 것, 즉 무의식적인 것이 되면서 더는 발전하지 않는 지점을 '오케이 플래토'라고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심리적 장벽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정체 현상은 '자신이 설정한 만족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만족한 수준'에 도달하면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되어 발전이 멈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케이 플래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점이나 약점을 찾아내서 고쳐나가는 '주도 면밀한'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연습시간의 양보다는 어떻게 연습하느냐가 중요하며, 연습 과정을 의식적으로 통제해서 자동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한 달을 넘게 연습해왔던 Riopy의 I Love You 악보를 펼쳤다. 녹화버튼을 누르고 연주를 시작했다. 몇 마디 못 가서 틀리는 부분이 나왔다. 다시 녹화를 시도했다. 좀 전에 틀렸던 부분이 다가오자 머뭇거려졌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매달리다 결국 녹화를 중단했다.


문득 잘 안 되는 부분, 어려운 부분을 슬쩍슬쩍 대충 건너뛰며 연습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더 이상 집중할 필요가 없는, 손이 알아서 잘 돌아가는 부분만 반복하면서 '가짜 연습'에 만족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나에게 연습시간이 부족해서, 어려운 곡을 선택해서, 레슨을 받지 않아서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아마추어인데 그 정도면 잘하는 것이라고 인정해주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라고,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라고 스스로 세워놓은 장벽 앞에 섰다.

시간이 얼마나 들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기술적인 완성'을 넘어서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찾아 음악에 담아내는 '진짜 연주'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메트로늄을 켜고, 연필을 들고 '진짜 연습'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폴리 리듬, 그렇게 어려운 거였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