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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Nov 11. 2023

내 마음속에 고장 난 기계들

"클루지를 읽고"

나는 '열등감'이 어떻게 마음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알게 된 이후부터 어떤 사람이나 정보를 볼 때 불편한 느낌이 들면 가장 먼저 '내 속에 숨겨져 있는 열등감'을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열등감은 거의 모든 사고 영역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내 모습이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느껴지게 하는 대상이 감지되는 순간 투명 망토를 입고 튀어나온다. 그리곤 자기 합리화라는 무적의 무기를 꺼내어 내가 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다. 죄책감을 면제시켜 주는 것은 덤이다.


나는 나의 열등감을 지켜보면서 '왜 열등감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정신도 수만 년 진화의 산물이라면 열등감도 뭔가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은 정신적 건강을 위한 회피 기제일까? 아니면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정신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산물일까?


그런데 '클루지'를 보면서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진화가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진화의 관성' 개념은 그동안 풀리지 않은 여러 심리 특성, 정신적 불완전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맥락에 의존한 기억의 불완전성, 수많은 편향에 노출된 왜곡된 신념, 반사 체계에 먼저 의존하는 사고 시스템, 불완전한 언어 체계, 생존에 불리한 쾌락 시스템, 미래의 중요한 목표보다, 당장의 만족을 더욱 중요시하는 내적 동기 시스템 등에 대해 알고 나니 내가 왜 할 일을 미루고, 운동이 하기 싫고, 오늘 저녁 맥주 한잔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감정, 생각, 쾌락을 관장하는 프로그램이  수만 년 전에는 유용한 진화의 산물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고장 나고 낡은 기계였던 것이다. 내 마음속 고장 난 기계들은 내 눈과 귀를 가리고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보게 하고,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내팽개치고 당장 오늘의 만족만 좇도록 하고 있었다.


나의 사고체계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는 통찰은 내 신념이 옳고, 나의 결정이 합리적이며, 내 생각이 객관적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인식하게 했다. 또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신념들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자동 반사적인 우리의 사고체계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러기 위해선 대안도 함께 검토하고,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고,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고,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가지 않고, 우리가 느끼는 강렬한 쾌감은 일시적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순응' 시스템은 환경, 돈 등이 우리의 생각보다 덜 중요할 수 있으며, '행복'이라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맥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고민을 해오던 나는 '행복'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인간은 행복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했다는 저자의 말에 '행복'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은 마치 신기루를 쫓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이끌었던 '행복'에 대한 희망이 사실은 유전자의 속임수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그동안 내가 하고자 했던 목표들을 다시 꺼내서 재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위험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사고체계에 맞서 미루던 것들, 도전하기 꺼려하던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마음속 고장 난 기계에 대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되자, 이에 대항해서 진실을 똑바로 보고 내 삶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제부터 내 사고체계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공략집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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