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관리 2개월차 경험담
아니 신경 쓰는 게 귀찮다. 한 번도 머리에 뭘 바른 적이 없다. 1년 내내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않는다. 옷은 바지 다섯 벌, 셔츠 다섯 벌만 있으면 된다.
원래 나는 숱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미용실에서 내 머리카락이 가늘다고 했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신경 쓸 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 고개를 숙이다 깜짝 놀랐다. 정수리 부근이 휑했다. 주변 사람들 중 용감한 몇 명이 목격담을 말해주었다. 외모관리는 시간낭비라는 내 신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탈모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탈모 치료제가 발명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탈모에 좋다는 샴푸, 약, 기능식품은 그저 상술로 보였다. 브루스윌리스도, 반디젤도, 축구선수 지단도 돈 많은 대머리 아닌가? 하지만 탈모가 내 문제가 되고 보니, 이러한 냉소적인 태도에 변화가 일었다.
인터넷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탈모'를 검색했다. 순간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한 동영상들이 수두룩했다.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탈모 걱정을 하는구나'
탈모에 효과를 봤다는 후기 영상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탈모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 남성호르몬이 탈모의 주범이었다.
- 남자는 남성호르몬을 줄여주는 약으로 탈모를 늦출 수 있었다.(단, 여자는 이 약을 먹지 못한다)
- 미녹시딜 성분을 두피에 바르면 혈류를 확장시켜 머리카락이 나는 효과가 있다.
(미녹시딜을 약으로 먹기도 하는데, 아직 FDA 정식 승인이 안나 처방을 받기 어렵다)
- 탈모 관리 초반에는 머리카락이 왕창 빠지는 쉐딩현상이 나타난다.
"어떻게 오셨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탈모 치료 하러 왔어요"
정적이 흘렀다. 이내 간호사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네, 잠시 기다리세요"
진료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여 정수리 부분을 의사에게 보여줬다. 의사는 의료용 카메라로 머리카락을 뒤적거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난생처음 내 두피 사진을 봤다.
"얇아진 모발이 듬성듬성 보이시죠?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일단 한 달 치 약 처방해 드릴게요"
병원 문을 나서서, 옆에 약국으로 갔다. 처방전을 내밀었더니 약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탈모약 프로페시아군요. 정품이고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약사 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탈모약을 매일 한 알 먹는다. 아침저녁으로 로게인폼을 바른다.(미녹시딜 성분이 포함된 무스). 아침에는 샴푸에 커피가루를 섞어서 머리를 감는다.(카페인에 남성호르몬 억제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려면 하루 생활 패턴을 조정해야 했다. 운동하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이 아침저녁, 머리에 약을 바르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했다.
문제는 이런 패턴을 탈모 관리를 그만둘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단하는 순간 다시 탈모는 진행된다.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 달에 5만 원 정도 하는 비용도 연간으로 따지면 60만 원이다. 만만치 않다.
그리고 주변사람 사람들에게 탈모 커밍아웃을 했다. 쉐딩현상의 굴욕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도 탈모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우리는 탈모 전쟁에 참전한 동지가 되었다.
어느 날 아내가 머리에 약을 바르면서 탄성을 질렀다.
"여보, 휑한 부분이 엄청 줄어들었어. 웬일이야. 당신은 쉐딩현상도 없나 봐. 처음보다 정말 좋아졌어"
결과는 대만족이다. 젊음이 다시 내게로 왔다. 자신감은 덤으로 따라왔다. 대충 씻고 마는 습관도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가꾸고 소중히 여긴다는 게 어떤 것인지 느껴졌다.
요새 주변에 탈모가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말해준다. 나도 인터넷에 '탈모'라는 단어를 입력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항상 그랬다. 심리적 장벽을 넘어, 인정하기까지가 가장 어렵다.
신기하게, 외모를 관리하니 마음도 같이 젊어진다. 자신감이 높아지니, 도전하고 싶어 진다. 나도 모르게 활력이 넘친다. 그렇다. 외모관리는 시간낭비가 아니다. 나를 소중히하고, 내면도 함께 가꾸는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