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1만 권 독서법
최근에 책을 한 권 두권 읽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시간을 내서 힘들게 읽은 책이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라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를 할 수도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감명 깊은 부분을 나중에 확인하고 싶거나 글을 쓸 때 참고하고 싶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책을 쓴 사람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의 정수를 쏟아부었을 텐데, 단지 몇 시간 만에 그 책을 읽고 덮어버리면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책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정리'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나중에 '정리'한 자료를 보면 책의 전반적이 내용이 다시 떠오르도록 감명 깊은 부분, 지식이 될만한 부분을 정리했다. 한 권을 제대로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책을 읽고 나면 확실히 기억에 많이 남았다.
하지만, '정리'하며 책을 읽는 방식도 문제가 많았다. 먼저 책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책의 세밀한 내용은 기억이 나는데, 전체적인 핵심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듯한 답답함이 들었다.
지하철 출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잠깐 책을 읽고 싶었지만 정리를 못하면, 나중에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책을 읽는 게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는 나에게 '하루에 두 권, 연간 7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저자의 '1만 권의 독서법'이라는 책은 내가 독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새로운 관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정독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서는 공부가 아니다 음악 듣기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운명의 단 한 줄을 만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동안 인상 깊었던 책들 떠올려 보면 전체 내용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었다. 수백 쪽에 달하는 페이지 속에서 내 마음에 와닿아 함께 울리는 지점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고, 영감이 떠올랐으며, 삶을 변화시켜보겠다는 에너지를 얻었다.
저자는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흘려듣는 듯 하지만 귀에 꽂히는 인상적인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 것처럼 책도 그렇게 흘려 읽으면서 운명적인 단 한 줄을 만나도록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운명적인 부분을 몇 개 정도만 자신만의 노트에 '직접 필사' 해보고,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줄 리뷰' 정도면 나중에 그 책을 다시 떠올리는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도 시도해보았다. 어깨에 힘을 빼고, 정리를 위한 노트북도 집어치우고 책의 내용이 내 마음속으로 쑥 흘러들어왔다가 나가도록 했다. 내가 생각해왔던 고민과 저자의 경험담이 맞장구치면서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표현을 달리하며 반복해서 계속 들어왔다. 점차 머릿속에 남는 메시지가 선명해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을 대하는 내 걱정이 환호로 바뀌었다. 마음속 부담감은 날아갔고 다시 흥미진진해졌다.
그렇게 오늘 출퇴근 지하철에서 1시간,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책을 두 권 읽었다. 책을 읽고 느껴진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렇게 글로 남겨놓고 싶어졌다. 자칫 독서에 흥미를 잃을 뻔한 나를 구해준 저자에게 이렇게라도 감사한 마음을 남겨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