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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Mar 26. 2022

하루에 두 끼만 먹기로 했다.

하지만 간식은 제외입니다.

아내의 소화 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2년이 거의 다 돼간다. 아내는 20~30대 시절에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가끔 소화가 잘 안돼서 고생한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아내는 저녁 식사 후에 소화가 더 힘들었다. 직장을 다녀와 허기진 상태로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새벽까지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밀가루 음식은 점심에 먹어도 밤늦게까지 소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 특히 컨디션이 나빠서인지, 글루텐을 아내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밀가루 음식은 더 조심해야 했다. 젊은 시절에 그렇게 빵을 좋아하던 아내였는데, 카페에 가서 조각 케이크를 보며 주저하는 아내를 볼 때 마음이 아프다.


소화 장애는 먹는 즐거움을 스트레스로 바꾸는 것을 넘어 수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에게 항상 어제 '누워서' 잘 잤는지, 소화가 안돼서 새벽에 일어났는지 물어본다. 아내의 대답이 그날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침식사와 점심식사는 웬만하면 괜찮았다. 물론 과식을 하거나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조심해야 했지만, 그래도 아침과 점심에는 충분히 먹고 소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늦어도 5시 이전에는 식사를 마쳐야 그날 무리 없이 잘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우리가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내가 저녁을 먹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의 증상을 검색하다 성인의 약 25%가 역류성 식도염 같은 소화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불편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당연히 먹는 저녁식사가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알게 된 회사 동료가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소화에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 동료는 저녁식사를 안 하면 체중 조절이 쉽고, 잠을 푹 잘 수 있고, 점심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며 좋은 점이 한두 가지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상사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그 동료는 진짜 먹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못하는 것이 아내와 나에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행이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더 알아보니 '저녁을 안 먹는 선택'을 한 사람들의 건강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떤 책에서는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 먹지 않는 것이 숙면에 좋다고도 했다.


"여보, 우리도 이제부터 같이 하루에 두 끼만 먹자"
"나도 당신과 함께 더 건강해지고 싶어"


나는 아내에게 우리도 '저녁식사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하자고 했다. 먹고 싶은데 건강하지 않아 불행하게 참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건강을 위해 '같이 저녁 식사를 안 하겠다고 결심'하자고 했다.


그렇게 결심한 이후 우리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저녁 활동을 줄이고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속을 비우고 잠을 자니 정말 숙면에 도움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공복에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퇴근 후 시간도 훨씬 여유로워졌다. 예전에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치우면 거의 9시였다. 그러고 나면 포만감에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이젠 저녁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책도 보고, 이렇게 글도 쓴다. 허기가 져서 참기가 힘들면 바나나 같은 과일을 먹거나 아몬드에 우유 한잔이면 충분하다.


주말의 일상도 크게 변했다. 특히 점심을 오후 2~3시 사이에 먹는다. 아내와 주말 점심은 한 주간의 우리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집 밖으로 나가 즐겁게 먹는다. 저녁을 먹지 않기에 점심에 조금 더 돈을 써도 부담이 없다.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치울 필요가 없으니 주말 시간도 여유가 많아졌다. 그렇게 되찾은 여유를 아내와 함께 산책하고 산에 오르고 운동하는데 쓴다. 물론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챙기는 일은 남아있지만 훨씬 일이 줄어들었다.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닙니까'라는 책에서 '스트레스는 어떤 상황에 대한 해석'이라고 했다.
상황에 대한 해석이 바뀌면 스트레스도 사라진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이라고 생각한 것을 새로운 선택을 통해 더 건강한 습관으로 바꿔나갔다.


오늘 아내와 공원을 걸으며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보자는 꿈을 다시 이야기했다. '저녁 식사를 못하는데 즐거울까?',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안 먹으면서 돌아다닐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음식에 대해서, 요리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양분이 충분하면서도 소화가 잘되는 음식과 요리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아내에게 잘 맞는 음식을 찾아내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선택지'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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