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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Jan 16. 2021

첫 번째 기말고사

"아빠 오늘 영어 백점 맞았어"


점심시간이 지나자 아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좋아하는 과목이었지만 시험기간 중 첫 번째 날 과목이어서 잘 못 볼까 봐 노심초사하더니 잘 맞았나 보다.


아들은 나와 중1 1학기 정도까진 같이 공부하다가 인터넷을 통해 혼자 공부해왔다. 그러다 코로나로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많아지고 생활패턴도 흐트러지면서 중2 1학기 첫 중간고사 결과를 못내 아쉬워했다.


계속 학교를 못 가는 날이 많아지자 아들은 그 많은 시간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1학기 시험을 마치고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내가 돌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회사일로 불규칙하게 시간이 나고 아들도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기 영역이 점점 커져갔다.


갑자기 학원을 다니려다 보니 막막했다. 그래서 아내와 아들은 집 주변의 학원을 돌면서 면접을 봤다. 학원 선택과 수강 과목, 다니는 횟수 등은 전적을 아들에게 맡겼다. 이름 있는 학원도 있었지만 아들은 작지만 상냥하고 열정적인 학원을 선택했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학원이 아들은 재미있다고 했다.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런지 학교 마치고 한 시간 쉬었다 학원에 가서 저녁 8시가 넘어서 오는데도 불평이 없었다. 한두 번 친구와 놀고 싶을 때 학원을 쉬겠다고 하면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나도 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날은 정말 하기 싫은 날이 있지 않은가?


중간고사는 준비하는 둥 마는 둥 지나쳤지만 기말고사는 제대로 준비해보려는 마음이 생겼는지 나의 학생 시절 시험기간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 졸이며 시험 치르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이제부터 길고 계속되는 시험과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 안쓰럽기도 했다.


이렇게 아빠와 아들이 함께 공부하는 시절도 끝났다. 점점 그동안 해왔던 나의 역할들도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놀아줘야 하고 공부하는 것 봐줘야 하고 밥 챙겨줘야 하고 같이 자야 하고 내 시간은 언제 찾을 수 있나 했었는데, 그날이 이렇게 정말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아들은 변성기가 오기 시작하면서 부쩍 키가 크더니 어린아이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불과 2~3개월 만에 아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렇게 추억이 되는구나. 이렇게 내 품을 떠나가는구나. 허탈하지만 또 감회가 새롭고 또 혼자 스스로 잘해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감사하다.


오늘 아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두 번째 시험을 치렀다. 제대로 준비하고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실망스러우면 위축될까 걱정이 된다.


오늘은 야근으로 10시가 다 돼서 집에 도착할 듯싶다. 점심에 영어 백점 맞았다고 자랑하는 아들의 기쁜 모습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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