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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Jan 17. 2021

네가 좋아하는 것을 뺏지 않을 거야

감명 깊게 읽었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에서 난 아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가 상담한 환자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불안감을 갖고 있었으며, 열정, 열망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이 많은 은둔자의 삶을 살면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바로 부모님이 그렇게 나에게 벌을 주었어요. 무엇이든 잘못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버렸어요. 


'자 보자 테드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지? 오, 그래 다음 주에 아주머니께 가기로 했구나. 너는 정말로 거기 가는 것을 좋아하지. 그러니 네가 잘못한 대가로 아주머니를 보러 갈 수 없다고 해야겠어. 그리고 그다음은 활과 화살이야 너는 정말 그것을 좋아하지 않니? 그러니까 이걸 빼앗는 거야'


간단해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다 빼앗아버리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나는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었어요"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그동안 벌을 줄 때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는 방법을 쓰곤 했다. 


말을 안들을 경우 휴대폰을 며칠간 빼앗거나, 좋아하는 게임을 금지하고, TV를 없애는 등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딸이  기니피그 집 청소를 소홀히 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기니피크를 갖다 버릴 거야'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딸은 이런 내 협박에 강하게 '동물 학대'라고 반발했다. 내 모습에서 테드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이후 나는 아이들의 잘못과 상관없는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훈육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누리는 방법에 대해 조언은 하되 결정은 아이들이 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 부모로부터 '금지' 당하거나 '빼앗기'는 것을 듣고 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정권'이 소중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부모로부터 '조건 없이' 신뢰받는다는 것과 부모가 자기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정해주는 것에 대해 아이들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또 아이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아이들이 어떤 문제와 잘못에 맞닥뜨렸을 때 그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아빠인 나와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느냐이다. 아이들이 나의 조언을 신뢰할만하고 참고할만하다고 느끼냐이다. 


내 아들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 남학생이다. 중2병이 시작되면 부모와 대화가 끊기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종종 아들과 새벽 한 시가 넘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곤 한다. 어제도 아들은 최근에 좋아하는 공부 과목과 관심 있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기가 쓴 영어일기를 보여주었다. 나도 아들의 관심과 노력을 칭찬하고 최근 책에서 읽은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대화를 마치고 초등학교 때 자기 전에 꼭 안아주듯이 이제 나만큼 키가 크고 여드름이 한가득인 아들의 얼굴을 비비며 꼭 안아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기로 결심한 후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해야 하는지 정말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 아내와의 의견 차이를 좁히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시행착오도 많고 뭐가 맞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와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아이들을 볼 때, 항상 신이 나있고 자신에 차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나는 내 방법이 틀리진 않은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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