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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Oct 17. 2021

나의 첫 자전거 여행 5(3일 차 우중 라이딩)

마지막 날 날씨를 보니 지난주에 봤던 것과 같이 계속 비였다. 다행히 서울 쪽은 오후에 갠다고 나왔다. 


'오후에 개는 비라면 약간 흩날리는 비가 아닐까?'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잠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잠이 잠깐 깼다. 몇 시인 줄은 모르지만 비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새벽부터 비가 오는 걸 보니 아침에는 그치는 것 아닐까?'


이번엔 행복 회로를 돌리면서 아침 6시 반쯤 일어났다. 창문을 보니 어제 새벽에 들었던 빗소리 그대로였다. 거의 소나기 수준으로 쏟아지는 비였다. 예보를 보니 남쪽으로는 더 많이 오는 것 같았다. 


'2시간 정도 후면 그래도 좀 잦아들지 않을까?'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삭토스트 못지않게 훌륭하게 차려주신 아침 조식을 먹고 샤워하고, 짐을 정리하고 준비를 마쳤다. 그사이 혹시라도 빗줄기가 약해지는 게 아닐까 기대했지만 우산 들고나가도 흠뻑 젖을 만큼 빗줄기는 여전했다.  


'어쩔 수 없지, 운명인가?'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비를 맞기 시작하면서 페달을 밟았다. 비는 안경에 물방울을 금방 남겼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렇게 비가 오니 자전거 도로에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으니 위험할 일도 없다. 그런데도 나름 안전을 위해 후미등과 전조등을 켰다.


오분도 안돼 운동화, 양말 다 젖었다. 문득 군대에서 비 오는 날 행군하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전투화에 물이 차고 양말이 젖은 상태에서 행군을 한참 했는데,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었다. 


'자전거는 신발, 양말이 젖어도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아서 좋다' 


타고난 긍정 마인드를 이번에도 돌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서울 쪽으로 가면 비가 안 온다고 했어'


이제 비는 끝이라는 생각에 잠깐 정차하고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어서 짰다. 발바닥을 바람에 말리고 바람막이 잠바를 가방에 넣고 여분의 양말을 꺼냈는데, 가방 안에서 다 젖어 있었다.


'이 새들백 방수 아니었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사람의 고급스러운 새들백이 떠올랐다가, 다음엔 큰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정비를 하고 나니 한층 몸이 가벼웠다. 3일 차 마지막인데도 엉덩이만 조금 아플 뿐 근육이 피로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좀 지나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물웅덩이를 지나면 물살에 운동화가 담가지기를 반복했다. 발바닥은 부르트고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팔당대교쯤 오니 햇살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에 젖은 옷과 신발을 말리나 싶더니 갑자기 후드득 소나기가 왔다. 옆에 하늘은 맑은데 내 위의 구름에서는 비가 뿌려졌다. 


그렇게 마지막 날 라이딩은 비와 함께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오는 마지막 날 비가 왔기에 망정이지, 중간에 모텔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비를 만났다면 재정비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어릴 때 비가 오는 날이면 속옷 차림을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옷이 더러워지면 혼날까 봐 그랬는지, 속옷만 입고 타야 기분이 더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돼서 이렇게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돌아다녀보니 더 이상 깨끗하게 지킬 옷이 없다는 게 뭔가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 빗속 캠핑 때가 떠올랐다. 그 고생을 하며 친 텐트 속에서 잠을 자는데, 굵은 빗소리가 이상하게 시끄럽지 않았다.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비 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비는 나의 기억 속에 우울과 처짐보다는 들뜸과 신남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들뜨고 신나는 비가 나를 반겨주었다.  모든 것을 씻겨 내려주는 것 같이, 더 힘들고, 더 아프고, 더 지쳤지만 기다림의 끝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마지막 아라뱃길에 들어서자 노오란 황금색으로 변한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엉덩이 통증과 부르튼 발은 내 신경세포 온 구석을 찌르고 있었지만,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나의 첫 자전거 여행의 귀환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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