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든 준비가 되었다면, 내일이면 당장 떠난다면, 이제 1년간 여행을 간다면 얼마나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까? 내가 다녀본 여행은 길어야 10일 안팎이었다. 시간이 짧은 데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어서 준비만 수개월을 한 것 같다.
가족 여행을 갈 때면 수개월 전부터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여행 계획을 이야기해달라곤 했다. 같이 눈을 감고 집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며 노는지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은 매일 반복되는 그 이야기를 또 듣고 싶어 했고, 기대에 부풀곤 했다. 길어야 10일 안팎의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가기 전 몇 개월 전부터 우리는 이미 그 여행지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맞닥뜨릴 수 있고,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은 지나고 나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추억이 된다. 언젠가 내게 더 많은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주어진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아쉽지만 난 그렇게 여행을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난 여행 유튜버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에 잠시 상상에 잠겨보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여행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준비를 위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냥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 원하는 여행은 무엇인지? 이 세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다. 아직은 막연한 소망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싶다.
내가 더욱 준비를 꼼꼼히 하고 싶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아내와 내가 나이가 들면서 활동의 제약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젊을 때처럼 급하면 라면 하나, 햄버거 하나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건강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삶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전에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느끼고 생각하고 싶다.
아마도 언젠가 나와 아내가 맞닥뜨리는 여행은 ‘꽃보다 할배’에서 봤던 여행, ‘꽃보다 누나’에서 봤던 여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거동이 불편하고, 체력도 약하고, 쉬엄쉬엄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겪은 아내와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겨나는 감정과 삶의 의미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 나는 언젠가 아내와 그런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러한 내 소망이 항상 내 옆에서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 방구석 여행가로 먼저 세계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여행이 내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내 소망으로 채워 나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그날이 예상치 못하게 일찍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