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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05. 2022

아내의 의자

잠을 자다 인기척에 잠을 깼다. 아내가 옆에 없었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분명히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보니 아내가 컴컴한 거실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여보, 새벽에 뭐 하는 거야?"


아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녁에 먹은 게 소화가 안된 건지 더부룩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아내는 젊었을 때 스트레스가 심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끔 한의원에서 진맥을 해보면 소화기관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러다 2년 전쯤에 건강검진을 해보니 그동안 경증이었던 위축성 위염이 중증으로 나왔다. 일부 장상피회생도 진행되고 있었다. 의사는 위가 노화돼서 나오는 증상인데, 남들보다 좀 일찍 온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이후로 먹으면 쉽게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불편하고 목이 조이는 느낌이 왔다. 더 힘들었던 건 저녁을 먹고 나면 몇 시간 동안 누울 수 없었다. 처음엔 괜찮다가 오히려 두세 시간 지나면 불편감이 커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여러 번 병원을 찾아갔지만 위축성 위염은 나이가 먹으면 노화로 인해 위벽 점막이 얇아져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라, 약이 없다고 했다. 건강하게 관리해서 노화를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며 약도 처방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아내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먼저 일을 줄였다. 먹는 것에도 더욱 신경을 썼다. 저녁이면 아내 손을 잡고 집 앞 공원에 나가 한 시간씩 걸었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약해지는 것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더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대처하자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몇 시간 동안 누울 수 없는 것이 힘들었다. 아내와 나는 편하게 비스듬히 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버튼을 누르면 상체 부분이 올라오는 기능이 있는 병원 침대를 알아봤지만 침실이 병상으로 변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침대들이 있었지만 성능도 불확실했고, 오히려 침대로서 좋지 않았다.


그러다 아내와 잘 가는 가구점에 갔다. 많은 의자들 중에 '리클라이너 의자'가 눈에 띄었다. 평상시에는 의자였다가 뒤로 젖히면 비스듬히 누울 수 있는 의자였다.


'여보 이 의자가 너무 편하고 좋아. 뒤로 젖혔을 때 잘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네'


아내는 여러 의자에 앉아보더니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랐다. 디자인도 이쁘고, 뒤로 완전히 젖혀서 앉아보니 요새 인기 있는 '마사지 의자의 무중력 기능'처럼 누운 듯, 안 누운 듯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소중한 의자를 바로 집으로 모셔왔다. 아내는 이른 저녁을 먹고, 새로 사 온 의자에서 비스듬히 누워 잠을 청했다. 완전히 눕지 않으니 소화에도 좋고, 위산이 역류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밤을 불편함이 없이 보냈다.


이후 아내의 의자는 우리 집의  '소중한 필수품'이 되었다. 아내의 의자는 먹는 것에 대한, 잠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아내의 의자는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할머니의 효자손처럼 아내의 효자 의자가 되었다.


아내의 의자를 보며 의자가 필요 없던 때가 그립다. 젊고 활기찼던 그때가 그립다. 밤새 마시고 먹어도 잠 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던 그때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프다.


하지만, 아내의 의자를 보며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불현듯 찾아온 건강의 변화,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40년 이상을 더 써야 할 내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내 몸을 더 소중히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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